돈을 찾으려는 사람도, 찾지 않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예금을 인출하겠다고 창구를 찾았지만 과연 잘 하는 행동인지, 확신할 수 없는 듯 했다.
6일 오전 제일저축은행 여의도 지점을 찾은 박모(70ㆍ서울 대방동)씨는 기자에게 연신 “인출해야 되나요, 아니면 안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지난 4일 대기표를 받았다는 그는 “돈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정부에서 워낙 강하게 ‘제일저축은행은 확실히 부산저축은행과는 다르다’고 하니까 막상 고민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씨가 이 은행에 맡긴 돈은 5,250만원. 지난해 2월부터 이자 6%를 보장받고 매월 350만원씩 적금을 넣고 있다. 오는 9월 만기까지 약 5개월이 남은 상태. 고민을 거듭하던 박씨는 “일단 더 기다려 봐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사흘째를 맞은 제일저축은행 뱅크런 사태는 이날 들어 조금씩 진정되는 모습. 대기표를 받고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고객들이 늘고 있으며, 새로 대기표를 받으려는 예금자들의 발걸음도 줄어들었다. 4일 1,400억 가까이 빠져나갔던 예금인출 규모도 이날은 500억원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목 금감원 저축은행검사1국장은 “대기표를 받는 고객들이 4일에 비해 5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고, 인출액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제일저축은행측은 인출 규모의 감소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신규 예금이 들어오고 만기적금을 재예치하겠다는 고객이 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제일저축은행 관계자는 “4일 만기 적금 예금자들의 재예치 비율이 20%도 안 됐는데, 6일에는 50%를 넘었다”고 밝혔다.
가족이 합쳐 약 1억7,000여만원을 예금하고 있다는 전모(55)씨는 “사태가 많이 진정된 것 같고 지금 찾으면 손해 볼 것 같아 인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 고객은 “내 예금은 5,000만원 이하여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면서 돌아갔다.
고객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적금을 해약할 경우 은행 측만 이익을 본다”, “고객이 1,000억원 인출하면 저축은행은 되레 200억원 수익이 난다”는 말도 오갔다. 지금 인출할 경우 약정 이자의 절반만 보장 받고 나머지 이자분을 은행이 가져가는데 “수익이 더욱 늘어나 파산할 리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금융당국과 제일저축은행측은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초반엔 맹목적인 불신 때문에 ‘묻지마 인출’이 빚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이 재무건전성과 관계없는 개인비리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 뱅크런의 불길도 잡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에 하나 뱅크런이 계속돼 제일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게 됐더라면 정말로 저축은행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면서 “더 이상 비(非)재무적 요인에 의한 뱅크런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감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며, 추락한 신뢰를 복원시킬 만한 강력한 후속조치가 없다면 ‘제2의 제일저축은행’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여의도지점에서 예금 2,000만원을 인출했다는 이 모씨는 “저축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 자체가 찜찜하다. 예금자보호를 받는다 해도 오래 기다려야 하니 속 편하게 해약했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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