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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년 전부터 아버지가 위세를 떨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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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년 전부터 아버지가 위세를 떨친 까닭은

입력
2011.05.0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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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레이, 커미트 앤더슨 지음ㆍ한상연 옮김

초록물고기 발행ㆍ432쪽ㆍ2만2,000원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며 회자됐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의 일부다.

아버지의 위상이 추락할수록 아버지에 대한 물음은 계속된다. 미국 인류학자 피터 그레이와 커미트 앤더슨이 쓴 은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진화인류학과 비교문화 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통해 아버지의 보살핌이라는 현상을 깊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암컷뿐만 아니라 수컷 역시 자식 양육에 깊이 관여하는 조류와 달리 포유류는 수컷이 자식에게 보살핌을 베푸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늑대 난쟁이몽구스 코요테 등 무리 생활을 하는 일부 육식동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수컷 포유류는 새끼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이나 오랑우탄도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화석 연구에 따르면 6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 및 보노보와 갈라질 때만 해도 다처다부제 생활을 했고 아버지의 보살핌은 없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아버지 행동은 인류가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됐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아버지의 보살핌이 출현한 시점은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현생인류가 출현하면서였다는 견해도 있고, 약 50만년 전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시대였다는 견해도 있다. 로버트 트리버스나 찰스 다윈 같은 진화론자들의 설명으로는 이것은 암컷을 두고 벌이는 수컷들의 경쟁을 회피하려는 노력에서 일부일처제가 생겨나면서 보편화한 현상이다.

인류가 진화해 왔듯이 아버지의 보살핌 역시 시대와 문화, 생계 유지 방식, 혼인 제도 등 여러 사회ㆍ경제적 요인의 영향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현대에 아이를 가장 열성적으로 보살피는 아버지는 중앙아프리카 콩고의 수렵채집 부족인 아카족의 아버지이다. 아카족 아버지는 사냥캠프에 머물 때도 어린 자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전체 시간의 22%나 된다. 하루 종일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가까운 곳에 어린 자식을 두고서 정성껏 보살핀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산업사회에서도 나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가령 인도의 아버지는 하루에 3~5시간 가량을 어린 자식 옆에서 보내는 반면, 일본의 아버지는 하루 평균 20분 정도만 자식과 함께 한다. 그 중간에 말레이시아의 도시 지역 거주 아버지는 1시간 30분 가량, 자메이카의 아버지는 약 1시간 가량을 젖먹이 아이를 돌보는 데 할애한다.

길게 보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아버지의 보살핌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것이 최소 15만년 이상 떨쳐 온 아버지의 위세가 현대에 들어와 와해된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사회의 임노동 경제 하에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고, 어머니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먹이를 구하는 일이 아버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뜻밖에도 최근 수십 년 간 아버지의 보살핌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캐나다 호주와 유럽 13개국 등 16개의 산업국가의 육아일기를 분석한 결과,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자식을 보살피는 시간이 1960년대의 1일 평균 0.5시간에서 90년대 1.17시간으로 늘어났다. 어머니가 보살피는 시간 역시 같은 기간 1일 평균 2.06시간에서 2.79시간으로 늘어났다. 가족의 규모가 크게 줄어 들어 자식 한 명 한 명에게 쏟는 시간의 양이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했다. 한국도 최근 10여 년의 사정을 보면 유사할 것으로 짐작된다.

아버지가 탄생하는 것은 바로 자식이 탄생하는 그 순간이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1억 3,00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므로 그 만큼의 아버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한 세대 전 만해도 서구사회에서도 아버지가 자식의 출산을 옆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요즘은 아버지가 자식의 출산을 곁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출산을 지켜볼 엄마 쪽 친ㆍ인척이 줄어든 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아버지들은 아이의 임신을 알게 되면서부터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쿠바드라 불리는 아버지의 역할을 발달시켜 가며 부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가 되기 위한 관문인 결혼을 둘러싼 여러 문제,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가 자식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 의붓아버지 아버지로서 사회 생활과 일을 병행하는 어려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다.

과거와 달리 늦은 나이에 겨우 배우자를 얻어 아버지?되는 남성이 많고,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다 보니 의붓자식과 함께 사는 아버지도 늘어나는 등 변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계적 현상이다.

배우자와 헤어졌을 경우에도 양육비를 제공하며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인간 아버지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에 대한 이해임을 알 수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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