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999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도 숱한 굴곡이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총체적인 허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방문해 "여러 분은 조직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서릿발 같은 질책을 내놓았을까. '금융 포청천'이 되어야 할 금감원은 무능과 무책임, 비리로 얼룩진 '복마전'으로 드러났고, 그 신뢰는 이제 바닥까지 추락해 버렸다.
추락하는 금감원
금감원 한 직원은 "요즘 뉴스만 보면 혹시 또 금감원이 연관된 것이 아닐까 놀란다. 친구들과 연락하기도 창피하고 혹시 아이까지 어떻게 생각할지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검찰'을 자부하던 금감원의 무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건. 검찰이 짧은 기간에 적발해 낸 부산저축은행계열의 온갖 불법행위를 금감원은 지금까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다. 더구나 영업정지 전날 해당 저축은행에 검사 인력을 파견해 놓고도, 대주주나 친인척들이 대거 예금을 인출해 가는 것 마저 멀쩡히 눈을 뜨고 놓쳤다.
이 뿐이 아니다. 한 금감원 전직간부는 재직 시절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현재 모 금융그룹계열 자산운용사 감사로 재직 중이었다. 비리에 낙하산까지 겹친 이 사건은 금감원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최근 한달 새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금감원 직원이 무려 6명이나 된다.
뿌리깊은 유착
금감원의 도덕적 해이가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00년 '정현준 게이트'와 연괸돼 장모 국장이 자살을 한 것을 비롯해 각종 게이트 사건 때마다 금감원 직원들의 이름은 빠지질 않았다.
여기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한 금융회사의 유착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금감원은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전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ㆍ조사권과 인ㆍ허가권을 갖고 있다. 아무리 자체 모범규준 등을 만들어서 통제에 나선다지만, 해당 금융회사들의 로비에 항상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특히 저축은행처럼 감시망이 허술한 금융회사와는 아무래도 은밀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더구나 퇴직 후 금융회사 감사 자리는 금감원 직원들에게는 '정당한 뇌물'처럼 받아들여진다. 금감원 내 승진 경쟁에서 탈락하는 경우 금융회사 감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한다. 퇴직 전 '보직세탁'도 철저히 이뤄지기 때문에, 공직자 취업제한(3년) 조항도 거의 무력화된 지 오래. 이러니 4월말 현재 금융회사 감사로 재직 중인 금감원 출신 인사가 무려 45명에 달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퇴직 후 자리 챙기기에 급급하다 보니 해당 금융회사의 각종 비리를 눈 감아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감사로서의 전문성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허울좋은 것이었는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있나
따지고 보면 금감원은 돈(억대연봉)과 힘(막강권한)을 양손에 거머쥔 거의 유일한 조직이다. 더구나 반관반민(半官半民) 신분이어서, 받는 규제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젠 발등의 불을 끄는 차원이 아닌, 해체 후 재건축하는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금감원에 주어진 독점적 감독ㆍ조사권을 분산해야 된다는 요구가 많다. 금감원을 견제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예금보험공사, 한국은행 등에 감독권을 일부 넘겨줘야 한다는 것. 또 금감원 출신들은 민간 금융회사로의 이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되, 금감원 간부들을 민간 금융회사에서 충원하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감독기구 개편 요구도 다시 제기된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이 기회에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아우르는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금감원의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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