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부실 저축銀 아닌데… '묻지마 뱅크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부실 저축銀 아닌데… '묻지마 뱅크런'

입력
2011.05.03 17:30
0 0

4일 오후 제일저축은행의 서울 장충동지점. 이른 새벽부터 달려와 번호표를 받은 고객부터 뒤늦게 소식을 듣고 합류한 고객까지 수백 명이 뒤엉켰다. 이날 제일저축은행이 예금을 내준 고객은 대기표 400번까지. 하지만 오후 4시 무렵 대기표는 이미 1,900번을 넘어섰다. 다음 주 후반이나 돼야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순번. 제일저축은행계열 10개 영업점에서 전날 600억원 가까운 예금이 인출된 데 이어, 이날은 1,1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런(대량예금인출)이 또 터졌다. 부산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을 쓰러뜨린 지 2개월반 만에 또다시 대형 쓰나미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제일저축은행은 기본적으로 부실 때문에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등과는 전혀 다른 경우. 임원 1명이 부동산개발업체에 600억원을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수사를 받게 된 데서 예금인출사태는 시작됐다.

제일저축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28%로 기준치(5%)를 크게 웃돈다. 부실여신비율도 6.1%로 업계 평균(10.6%)에 훨씬 못 미칠 만큼 재무상태는 건전하다. 회계장부가 공개되는 상장사인데다, 자체 유동성만도 6,500억원에 달하는 '모범'저축은행이다. 그런데도 건전성과는 아무 관계없는 개인 비리사건 때문에 예금주들이 몰려가고, 그 소식에 남은 예금자들이 덩달아 돈을 빼는 일종의 '집단패닉'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금융권과 금융당국은 부산저축은행 때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제일저축은행 측은 이날 "이번 사건은 부산저축은행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라는 안내문을 내붙였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이 직접 지점에 나가 "저축은행 유동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필요하면 당국도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득했고, 심지어 사건을 수사중인 의정부지검 고양지청까지 보도자료를 내 "수사는 어디까지나 개인비리에 한정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불붙은 예금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진 못했다.

한 60대 예금주는 "1월 문닫은 삼화저축은행에 예금해 뒀다가 이자 1,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린 경험이 있어 무작정 달려왔다"고 했고, 한 50대 부부는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불안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이자를 좀 손해 보더라도 예금을 찾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이 심각한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사태를 통해 "금융기관도 금융당국도 못 믿겠다"는 심리가 퍼지면서, 건전성과는 무관한 작은 충격, 사소한 소문에도 뱅크런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시스템은 작동할 수 없다"며 "이 심각한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하루 빨리 저축은행 업계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회계장부에 대한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