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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겁나게와 잉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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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겁나게와 잉 사이

입력
2011.05.0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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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 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 이원규는 길 위의 시인이다. 그는 도보로 만 리 길을 걸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를 외치며 4대강을 따라 100여일을 걸었고, 전라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걷기도 했다. 그는 길을 걸으며 겁 없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희생되는 자연의 신음소리를 듣고 시로 옮겼다.

‘겁나게’와 ‘잉’에는 어떤 의미가 배여 있을까.

나는 인간이 느끼는 겁이란 감정을 존중한다. 만약 인간이 겁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세상이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겁 때문에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를 두기도 하고 믿기도 하는 것 아닐까. 겁 때문에 그나마 평화도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닐까. 겁을 안 먹고, 신성한 겁을 저버릴 때 세상사에는 문제가 생긴다. 겁을 모르는, 막돼먹은 사람을 일러 겁대가리 상실한 놈이라 비하하는 욕도 있지 않은가.

‘잉’이란 종결어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떻소, 하고 동의를 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 싶다. 동의란 타인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겁나게’와 ‘잉’에는 겸손한 마음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어감만큼이나 뜻이 아름다운 이 두 말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세상은 보다 평화로워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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