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역정이 혼미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터키식 모델을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 지역의 아랍 국가들이 일정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본받을 만한’체제의 모델로 터키를 꼽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터키가 이슬람의 강한 종교적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민주화된 세속적인 정부를 통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99%가 이슬람 수니파인 상황에서도 터키가 극단적 이슬람 신정 국가로 흐를 위험이 희박하다는 것은 서방을 안심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여기에다 터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보여주고 있는 경제적 역동성과 활력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래서 터키를 두고 이슬람과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의 3대 요소를 보기 드물게 조화시켜 가고 있는 나라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터키는 유엔의 이름아래 6ㆍ25 전쟁에 참전한, 이른바 우리의 혈맹국이다. 그런 터키가 600년간 이어오다 세계 제1차 대전 이후에 접어야 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다시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리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터키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고 양국이 함께 도모해 볼 수 있는 경제적 기회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터키가 가는 길이 곧고 넓은 길이 아니라는 점도 지역 정세의 위기적 상황과 맞물려 시간이 갈수록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도약을 위한 터키의 발걸음이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에서의 민주화 요구를 관철하는 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시리아, 이란, 예멘, 리비아, 수단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교역과 투자’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고 ‘무분쟁 정책’을 추구하다 보니 이들 국가의 정정을 불안케 하는 민주화 시위에는 침묵을 지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터키의 최고 지도자들은 미국 등의 요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튀니지, 이집트, 리바아 등에서의 독재자 축출 필요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사퇴가 사실상 가시화된 때에야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와 터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는 갈등도 지역 정세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나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을 보다 확고히 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가 지속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최근 양국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독재자 축출에 미온적인 터키가 이러한 갈등 속에서 프랑스 견제를 위한 정치적 고려까지 하게 되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등은 더욱 지지부진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터키를 상대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국제사회가 흔히 인정하는 이상과 명분을 좇아 민주적 가치에 대한 입장을 좀더 확고히 해 달라는 주문을 할 수도 있고, 프랑스 등과의 관계에서 눈앞의 이익 보다는 대의를 추구해 달라는 당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렇게 당연할 것 같은 요청에 따를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도 갈팡질팡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터키식 모델의 발전은 주변 상황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일방적인 준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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