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와 제례악, 즉 종묘대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되는 제례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기자는 1일 어가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오전 6시 경복궁은 인산인해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이라 평년(1,000명)보다 많은 1,200명을 선착순으로 뽑는다지만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 내린 사람들은 "번호표를 받지 못하면 공친다" "사람들이 다 차간다"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자 일제히 득달같이 뛰기 시작했다. 기자도 덩달아 달음질을 해 900번대 번호표를 받았다. 모집공고를 본 고등학교 학생부터 수업이 없는 대학생, 종묘공원에서 소일하던 어른 등이 주차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등줄기의 땀이 식어 한기가 느껴질 무렵 역할 분담을 위한 차출이 시작됐다. "키 180㎝ 이상 앞으로 나오세요", "자신이 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일어서시고." 일당을 조금 더 받을 줄 알고(일당은 3만원으로 동일하다), 사진에 많이 찍혀 얼굴 알릴 요량으로 우수수 일어났지만 상당수는 다시 앉아야 했다.
"아저씨는 호위무사, 아저씨는 위패를 들 문관…." 외모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이들이 차출되자 나머지에게는 포졸과 기수 등의 볼품없는 역이 부여됐다. 기자는 힘이 좋게 생긴 탓인지 세자마마의 가마꾼으로 낙점 받았다. 거의 1시간 만이었다.
역할에 맞는 의상과 소품을 지급받는데도 1시간 가량이 걸렸다. 지루함에 좀이 쑤시는지 더러는 담배를 피우려고, 일부는 화장실을 가려고 정해진 대열에서 이탈했다. 작업반장의 타박이 쏟아졌다. "형님 누가 화장실 가랬어요", "궁 근처서 담배 피면 자른다고 했죠." 문관이고 무관이고 포졸이고 지엄한 주상전하보다 작업반장을 더 두려워했다.
각자의 의상을 입는 장면은 충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숫제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관모를 돌려 쓴 이, 옷고름을 제대로 매지 못해 흘러나온 도포를 연신 밟는 이, 창을 잘못 잡아 앞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이 등등. 고함을 내지르던 작업반장들이 육두문자까지 퍼붓는다.
복장을 갖춰 대열을 맞춰 섰지만 엉성하기는 마찬가지. 세자마마를 측근에서 모시게 된 기자는 가마 옆에서 1시간 반 가량 무료하게 보내고서야 세자를 알현할 수 있었다. "화의군의 17세손을 맡은 배문중 2학년 이경태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씨 종친회에서 선정한 이날의 세자였다.
오전 11시20분. 드디어 어가행렬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가마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인 등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카메라플래시를 터뜨렸다. 앞뒤로 선 참석자들의 고개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차려 입은 행색에 기품이 넘친다.
그러나 아뿔싸, 10분이나 지났나. 앞서 가던 무사의 말이 자리를 빙빙 돌더니, 급기야 광화문대로 한복판에서 변을 본다. 기수보다 난감한 이는 뒤따르던 이들. 변을 피하느라 대열이 일그러졌다.
사진을 찍겠다며 행렬 중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관광객들, 난데없는 자전거, 막힌 길을 피하려고 끼어드는 버스 등에 행렬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몇 시간씩 걸리는 마라톤대회는 차량통제도 철저히 되더니 1시간 걸리는 임금 행사가 왜 이런 모양인지…." 일당 3만원짜리 알바들이지만 문제의식만은 불탔다.
경복궁을 떠난 지 1시간쯤 지났을 무렵 행렬은 세종로 종로를 지나 종착지인 종묘로 들었고, 힘이 들어갔던 어깨에서 스르르 긴장이 풀렸다. 김인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학예연구관은 "종묘제례에 수반되는 다른 행사도 원형 복원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어가행렬을 비롯해 제례가 원형에 가깝게 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를 대하는 시민들의 의식도 변했으면 싶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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