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는 것이 놀랍고 두려우며, 안타깝고 역겹다. 몇 달 만에 얼굴을 다시 내미는 경우, 예외 없이 몰라본다. 목소리를 듣고서, 자막을 보고서, 아니면 옆 사람에게 묻고 나서야 '그녀'라는 것을 안다.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그들에게 '변신'은 연기나 노래가 아니다. 얼굴이다. 이제는 대놓고 얼마 주고 어디를 몇 번했다고 떠벌리면서 공개적으로 성형을 부추긴다. 그러면"너무 예쁘게 했네"라고 맞장구 치며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얼빠진 동료들. 그것을 오락거리로 삼아 시청률을 높이려는 한심하고 뻔뻔한 방송사들.
■ "대한민국은 성형공화국"이라는 식상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신체손상이나 결손의 복구, 수술적 기법을 통해 신체의 원래 기능 회복이란 성형의 본래 목적을 주장하는 것도 이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성형이 개인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수 윤복희는 피부를 당기고 뼈를 깎으면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구강구조가 바뀌어 연기와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과다한 칼질로 무표정하거나,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얼굴로 눈물만 흘리는 고무인형을 드라마에서 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성형에는 시간을 멈추게 하려는 욕망도 있다. 특히 중년, 노년의 여자 연예인들이 그렇다. 십중팔구 주름을 당기고, 입술을 부풀리고, 눈을 찢어서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 한다. 이 역시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끔찍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원래 얼굴이 가진 개성, 자기 정체성, 세월이 쌓인 아름다움은 온데 간데 없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의 여주인공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거역한 자기파괴적'괴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소중한'추억'까지도 마구 부셔버린다.
■ 오랜 만에 무대에 서는 7080 여가수들. 노래는 분명 그 노래인데 아무리 과거 이미지와 시간을 조합해 봐도 가수는 그때 그 가수가 아니다. 노래만 남고 우리가 기억하는 가수는 사라져 버렸다. 드라마에서는 코와 눈이 닮은 연기자들이 세대를 초월해 넘쳐난다. 똑같은 눈매로 서로 노려보는 인조 얼굴들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필요조차 없다. 어느 날 또 바뀔 것이 분명하니까."자연스러운 얼굴이 가장 큰 연기다. 주름에도 감정이 스며있어 연기에 힘이 된다." 배우 안성기의 말이다. 연기뿐이랴. 노래도, 삶도 그럴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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