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전인 봉건주의 사회에서도 일종의 CEO가 있었다.
지주를 대리해서 소작권을 관리하던 마름이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사음(舍音)이라고도 했다. 마름은 소작농들을 쥐어짜 소출을 지주에게 바친다. 마름들도 소출을 챙긴다. 하지만 소출이 적으면 지주들이 마름을 못살게 굴거나 쫓아내는 일도 있다. 이 과정에서 소작농들이 마름에게 시달리고, 소작권을 빼앗기면 유민(流民)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지주보다 마름이 더 밉다는 말이 나왔다.
이 같은 관계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입을 해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지주를 대주주, 소작농을 종업원, 마름을 CEO로 치환한다면 이해가 쉽다. 대주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 받은 CEO는 직원들을 쥐어짜서 좋은 실적과 많은 이익을 내야 한다. 그래야 임기를 보장받거나 늘릴 수가 있다. 인센티브도 두둑하게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실적이 부진하면 언제든 주주로부터 해고를 당할 수 있다. 직원들도 CEO의 눈밖에 나면 실직 위험에 처한다. 그나마 봉건시대와는 달리 노동조합도 있고,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직종이 많아 일반 직원들의 삶이 그때보다는 나아졌다. 또 자영업에 뛰어들어 돈을 좀 번 사람들은 이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주목을 받던 개념으로 Stakeholder Capitalism(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은 Stockholder Capitalism(주주 중심 자본주의)과 큰 차이가 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달리 유럽식 이해관계자자본주의는 주주는 물론, 기업주, 경영자, 종업원, 고객, 노동조합, 경쟁사, 하청업체, 지역주민, 소비자단체, 환경 등 기업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주체들을 모두 배려하는 방식이다.
박정희 정권 이후 우리는'국민정서'를 중시하는 국가자본주의 형태의 체제를 상당기간 운영해오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 이후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으로 이해관계자들이 대거 회사 조직과 유리되면서 우리 사회에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한동안 서방에 확산됐던 이해관계자 모델이 이 즈음 주주자본주의 모델로 대체된 것이다. 이해관계자 모델에서 기업은 종업원의 복지는 물론 법인세 납부를 통해 공동체에 대해 책무를 이행한다.
하지만 주주자본주의에서는 CEO들이 주주들을 위해 주식가치나 배당금 등의 단기이익을 창출하는데 만 집중한다. 따라서 종업원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이익으로부터 소외를 당한다. 윌리엄 파프는 이런 방식을'CEO자본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동반성장''초과이익 공유제''중소기업 적합업종' '양극화' 등의 논쟁은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모델 사이의 어느 지점쯤에 우리 자본주의를 위치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동일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해관계자 모델로 점차 근접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주주와 CEO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골몰할 뿐, 이해관계자 배려에 인색하다. 정부가 동반성장을 아무리 외쳐도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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