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5공 시절입니까. 설마설마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네요."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29일 한 재계 관계자는 혀를 찼다. 오 회장은 옛 산업자원부 차관보 출신으로 전문성도 있고,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 업계의 신망이 높았다. 이 때문에 원래 2월22일 그의 회장직 연임이 추인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하루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가"우리나라 기름값이 비싸지 않다"고 주장한 직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총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문제는 그의 발언이 정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석유가격 태스크포스'까지 만들면서 기름값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유사의 석유공급 가격이 비싸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 오 회장이 대놓고 "그렇지 않다"고 소신발언을 한 것. 그 결과 공무원도 아닌 민간 협회장이 사실상 정부의 압박에 의해 자리를 내놓는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욱 한심한 일은 후임자인 박종웅 전 의원이 정유업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기자는 알 만 했다. 지난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날마다'민주연대21'이라는 단체와 함께 이른바 BBK 의혹을 제기했던 김경준씨를 비난하고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선 후보의 후보직 사퇴를 외쳤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때늦은 보은인 셈이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재ㆍ보선 패배 이후 "국민의 뜻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구시대적 행태가 버젓이 행해지는 것을 보면 이 대통령과 정부는 아직'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진석 산업부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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