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야당의 반발로 어제 본회의 상정 처리가 무산됐다. 여야는 소상공인과 축산농가 피해대책 등을 보완한 뒤 5월이나 6월에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정부는 입법 준비 등을 감안할 때 EU와의 7월 발효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며 볼멘 소리다.
정부 입장은 잘 알겠지만, "발효가 한두 달 늦춰진다고 큰일나는 게 아니다"라는 야당 대표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한ㆍEU FTA는 한미 FTA에 비해 지나치게 서두른 느낌이 있다. 한미 FTA의 경우 2006년 6월부터 국회 특별위원회가 18개월 간 국내산업 보호대책을 논의한 것과 견줘봐도, 한ㆍEU FTA의 득실은 충분히 검토됐다고 보기 어렵다.
구체적 협상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국내 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과 상생법이 제정됐지만, 유럽의 대형 유통회사가 국내시장에 진출할 때는 제한조치가 없고 EU 회사들이 자국 정부를 통해 한국의 유통법 등을 제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밝혀졌다. 학교급식용 식자재를 구입할 때 EU는 유럽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한다는 독소조항도 발견됐다.
정부는 현재 미국 EU 인도 등과의 FTA 협상을 완료했고, 호주 페루와의 협상도 조만간 타결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어제 "중국과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비준을 목표로 6월에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동시다발적 속도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경제구조가 수출 주도형인 우리는 FTA를 통한 해외시장 확대 전략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FTA가 농ㆍ축산업은 물론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 유통업과 서비스업, 일부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이 종사하는 산업이 몰락하고 일부 수출 대기업만 살찌움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우려도 있다. 성과에 집착해 비준을 서두르기보다는, 전반적인 국민생활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보완대책 마련에 더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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