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숙(45)씨는 요즘 아이들과 거리로 나앉게 될까 봐 밤잠을 설친다. 그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5년째 보증금 5,500만원에 월세 100만원씩 건물 1, 2층(총 35평)을 빌려 파랑새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해왔는데, 건물주로부터 이번 달까지 무조건 센터를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 성씨는 임대료가 두 배로 뛰는 바람에 6개월 전부터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내는 처지라 주인에게 더는 선처를 바랄 면목도 없다고 했다.
이대로 쫓겨나면 당장 머물 곳조차 없다. 구로동에 사는 아이들이 계속 이용하려면 센터가 동네를 벗어나서는 안되지만 남은 돈으로는 주변에서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센터 건물 건너편의 가리봉동이 재개발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른 탓이 컸다. 성씨는 "서울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외곽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며 "기존의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문을 닫는 편이 낫다"고 울먹였다.
해마다 치솟는 집값에 전ㆍ월세난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지역아동센터가 짐을 쌀 위기에 놓였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전지협)에 따르면 서울 지역 344곳의 센터 중 세를 든 공부방의 임대료는 대부분 올랐고, 그 중 10여 곳은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할 처지다.
전지협 서울지부 이수경(48) 부지부장은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성동구의 한 센터는 전세금이 수천 만원씩 뛰었다"며 "부족한 돈은 교사들의 사비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한계점을 넘었다"고 하소연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후공부방으로 이용하고 무료로 저녁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는 2004년 7월 법정아동복지시설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월 평균 350만원(아동 29명 이하 기준)의 지원금은 교사 인건비나 아이들 식비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센터 교사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고 근무하고 있다.
더욱이 얼마 안 되는 지원금마저 보건복지부가 임대료나 시설투자에는 쓸 수 없게 조건을 달아 센터운영자들은 애가 탄다. 전지협 이광진(30) 간사는 "아이들을 돌볼 안정적인 공간부터 확보한 뒤에야 복지서비스의 질을 논할 수 있다. 주민자치센터의 남는 공간을 활용하거나 저리 대출로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씨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센터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다들 제 자식 같죠. 우리 센터의 터줏대감인 열세 살 재윤(가명)이는 난독증에 발음장애까지 있지만 부모가 맞벌이라 거의 방치된 수준으로 왔어요. 처음엔 눈도 못 맞추던 아이가 공부방 교사와 친구들의 보살핌으로 이제는 학교도 빼먹지 않고 잘 다녀요. 센터가 사라지면 우리 재윤이는 누가 돌봐요."
아이들에게도 센터는 공부방을 넘어 또 다른 가정이다. 대부분이 한부모 또는 조손가정이거나 기초생활수급지원을 받는 어려운 형편이기에 센터에서 함께 나누는 정이 남다르다. 영등포구 쪼물왕국지역아동센터장 이인숙(44)씨는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학교 밖 유일한 공간이 공부방"이라고 했다.
성씨는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센터에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우애 좋은 삼형제가 있어요. 일용직노동자인 아빠랑 단둘이 사는 첫째, 부모님 가출 후 누나들 손에 큰 둘째,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과 70대 할머니와 사는 셋째. 태어난 가정은 다르지만 공부방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만나 의지하며 잘 커나가고 있어요. 삼형제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꿈이 너무 과한가요."
아이들은 최근 낯선 사람이 방문하면 혹 부동산에서 온 줄 알고 한참 놀다가도 뚝 그친다. 어린 맘에 시끄럽게 떠들면 일찍 쫓겨날 거라 여기는 모양이다. "이사가면 헤어지냐"고 갑자기 서럽게 우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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