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한창 인기가 좋았을 때와 비교해본다면 지금 인디 밴드, 소규모 음악인들의 처지는 좋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차곡차곡 쌓아 놓은 물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함께 힘을 모을 때라고 봅니다."
홍대 앞 인디 밴드를 중심으로 소규모 음악인들이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탄생시켰다. 조합원의 이름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기존의 생활협동조합(생협) 형태와 유사하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팍팍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힘을 모아 살 길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28일 조합 발족 준비에 한창인 1인 밴드 '회기동단편선'으로 유명한 단편선(25ㆍ본명 박종윤)씨를 만났다. 그는 "자립을 꿈꾸는 음악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힘을 합쳐 '같이 살고 같이 책임지는 조합'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합은 30일 공식 발족한다.
조합 운영은 일반 생협과 엇비슷하다. 조합원은 일정 수준의 회비를 납부한다. 그리고 모아진 돈을 생협에 가입한 음악인을 위해 사용하는 식이다. 공동 연습실을 빌리고, 공동으로 공연할 수 있는 클럽도 자체적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음반을 낼 돈이 없어 주저하고 있는 밴드에는 조합 이름으로 대출도 해준다는 계획이다. 단편선씨는 "1주일에 15만원 정도하는 연습실을 빌리는 것도 부담인 사람들이 많다. 음반 제작비는 꿈도 못 꾼다. 이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갚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조합에는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준비위원인 셈이다. 발족과 더불어 조합원 모집을 시작할 예정이다. 단편선씨는 "발족을 하고 나면 적어도 50명 정도는 오지 않겠나"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생협 구상은 사실 1년 전 이뤄졌다. 2009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강제 철거된 홍대 앞 식당 '두리반 살리기'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부터다. 그날 '2010 뉴타운 컬쳐파티 51+'가 열렸고, 참여했던 72개 밴드가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다 생협 아이디어가 나왔다. 단편선씨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공연장, 연습실이 하나 둘씩 사라져 나가는 걸 몸으로 느껴온 터여서 음악인들이 이심전심으로 취지에 공감했다"고 했다.
조합은 발족식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준비 중이다. '2011 전국자립음악가 대회 뉴타운컬쳐파티 51+'다. 홍대 일대에 4개의 무대를 마련하고 69개 팀이 참가, 조합 발족을 공식 발표하면서 '홍대 살리기'에 동참을 호소할 작정이다. 입장권 수익은 참가팀이 40%, 스태프 임금 20%, 두리반 살리기 지원에 40%가 쓰인다. 하루 전인 29일에는 홍대 앞 재개발 문제를 놓고 공개 토론회도 계획돼 있다.
홍대 인디밴드들은 나아가 부산, 대구 등 지방의 인디밴드를 묶어 '팔도 자립 네트워크'를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다. "각 지역에 근거하고 있는 음악인들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사회를 고민하고, 많은 사람에게 음악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계속 할 것이다." 단편선씨의 당찬 포부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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