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을 맡긴다"고 했던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27일 보란 듯이 자신의 운명을 찾아왔다.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 분당을 출마를 선언한 지 28일 만에 완성한 드라마다. 사지(死地)에 뛰어들어 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한 그에게는 이제 '야권 유력 대선주자 손학규'라는 전리품이 쥐어졌다.
분당의 승리로 그는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한나라당의 안방에서 이뤄낸 승리는 야권의 2012년 정권교체 전선에서 그가 가진 상품성을 유감 없이 느낄 수 있게 해 준 '사건'이다. '중산층에 통하는 후보' '확장성이 충분한 후보'라는 대선주자 필수 덕목을 당 안팎에 각인시킨 것이다. "손학규이기에 분당에서 이겼고, 손학규이기에 대선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는 지금껏 그에게 붙어 다녔던 '한나라당 출신 양자(養子)'라는 꼬리표의 부정적 이미지도 떼어낼 가능성이 높다.
손 대표의 부상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독주 체제였던 대선 구도가 출렁이는 시나리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손 대표는 그간 제1야당 대표이자 야권 대선주자였으면서도 지지율 한자릿수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던, 말 그대로 잠룡(潛龍)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날개를 달았다. 지지율 반등과 함께 '원외 대표'로서의 한계를 딛고 당 장악력 역시 공고히 할 전망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확인된 현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무기로, 충격에 빠진 여당에 맞서 야당 대표로 정국을 주도할 힘을 얻었다.
손 대표는 이날 당선 확정 직후 "손학규 개인의 승리가 아니다"고 했다. "변화에 대한 열망,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분당 시민을 통해 표현된 만큼 이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임을 다 해야 한다"며 더 큰 꿈을 향한 포부를 감추지 않았다.
운명을 걸었던 이번 승부를 통해 그는'승부사적 이미지'도 얻어냈다. 손 대표는 그간 "딱 떠오르는 뚜렷한 이미지나 색깔이 없다"는 평을 받아 왔다. 누구도 쉽게 승리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 그는 여러 차례 배수진을 쳤다. "모든 것을 바치겠다" "국민이 변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해야 할 일도 없다""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했다. 전남 순천 무(無)공천, 경남 김해 야권단일화에서 민주당의 양보를 주도하는 결단력도 과시했다.
선거에 앞서 민주당에선 "분당에서 이기면 모두 이기는 것이고, 분당에서 지면 모두 지는 것이다"는 말이 많았다. "분당에서 이기면 손학규만 보이고 민주당은 안 보일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았다. 이번 재보선을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손학규의 승리'라고 정리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경기 시흥ㆍ64세 ▦경기고ㆍ서울대 정치학과ㆍ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14~16대 의원 ▦민주당 대표(현)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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