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일이다. 부활절을 앞둔 목, 금, 토요일 사흘을 성삼일이라고 부른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삼일은 1년의 중심이자 절정이다. 예수 최후의 만찬,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며 가장 경건한 의식과 기도를 바치는 때다. 특히 토요일 밤의 부활 성야 미사는 연중 가장 성대해서 부활절 당일인 일요일 낮 미사보다 더 길고 장엄하다.
사제가 될 청년들이 모인 신학교인 수원가톨릭대에서 21~23일 성삼일을 지켜봤다. 평소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한국 가톨릭이 신학교를 언론에 공개한 전례는 2005년 가톨릭대 성심 교정(통칭 서울신학교)을 찍은 KBS 다큐멘터리가 유일하다.
◆성목요일
목요일 오후 늦게 수원가톨릭대에 도착했다. 왕복 2차서 도로를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 길 끝,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는 고즈넉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교정을 걸으며 묵주 기도를 바쳤다. 다들 검은 정장이나 수단(발목까지 내려오는 사제복)을 입었다. 성삼일의 시작인 저녁 8시 주님 만찬 미사를 위한 옷차림이다.
오르간과 성가대의 연주 속에 사제들이 교내 성당에 입장했다. ‘하늘 높은 곳에 하느님께 영광’을 노래하는 대영광송에서 오르간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이를 끝으로 부활을 기다리는 토요일 밤까지 오르간도 종도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주님 만찬 미사는 세족례를 재연한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 주며 보인 겸손과 사랑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때 예수는 새 계명을 주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집전을 한 이성효 수원교구 보좌주교가 세족례를 했다. 제단 앞 의자에 앉은 10명의 학생과 사제 1명, 부제 1명의 발을 정성껏 씻어 줬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나의 몸이고 피이니 이를 먹고 마시며 나를 기억하라.” 축성한 빵(밀떡)은 예수의 성체를 뜻한다. 성체를 나눠 주는 영성체를 마지막으로 미사가 끝났다.
미사 후 성체는 성당을 나가 지하에 마련된 수난감실로 옮겨졌다. 이제부터는 슬픔의 시간이다. 제대 중앙의 십자가는 가려졌다. 제대를 덮은 천도 벗겨졌다. 학생들은 대침묵에 들어갔다. 성체를 모신 방에서는 밤새 기도와 묵상을 바치는 성체조배가 이어졌다.
◆성금요일
최후의 만찬 다음날인 성금요일, 예수는 체포됐고 수난 끝에 십자가에서 숨졌다. 가톨릭교회가 1년 중 유일하게 미사를 드리지 않는 날이다. 대신 말씀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어지는 주님 수난 의식만 올린다.
신학교인 이곳에서는 오전 11시 십자가의 길 의식이 추가됐다. 성당 내 벽을 따라 14처를 돌며 학생들이 직접 쓴 묵상을 읽는 의식이 40분간 이어졌다. 신학생으로서, 장차 사제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저와 함께 산에 오르시는 줄 알았던 당신이 안 보여서 돌아보니 십자가를 진 채 저 아래 쓰러져 계셨습니다. 리포트, 세미나, 시험 등 제 일에 바빠서 몰랐습니다, 당신이 약한 줄을.”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도록, 세상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도록 힘을 주소서.”
예수가 숨을 거둔 시각인 오후 3시 성당에서 신동걸 신부의 주례로 수난 예식이 시작됐다. 예수의 체포부터 죽음까지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고, 십자가를 경배하는 의식이다. 독서와 강론에 이어 십자가 경배가 진행됐다. 사제 일행이 성당 입구에서 통로를 따라 들어오면서 십자가를 높이 들어올릴 때마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구원이 있네. 모두 경배하세’라고 노래했다. 제단 앞에 도착한 십자가 앞에서 사제들은 큰절을 했다. 이어 전날 수난감실로 옮겨졌던 성체가 돌아왔다. 묵상과 기도로 의식이 끝났다. 조명이 꺼졌다.
◆성토요일
가톨릭의 부활절은 토요일 밤 부활 성야 미사로 시작된다.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던 이스라엘 관습에 따른 것이다. 부활을 맞이하는 기쁨의 날, 이로써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간다.
밤 9시, 모든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서 거룩한 빛의 예식으로 부활 성야 미사가 시작됐다. 사제가 커다란 부활초에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파와 오메가를 새기고, 올해의 연도인 숫자 2011을 새겼다. 처음이자 끝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하며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이어 축복한 불로 부활초에 불을 밝혔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는 세 번의 노래, 창세기부터 예수의 부활까지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역사를 읽는 9개의 긴 독서가 끝나자 마침내 제대의 초가 점화되면서 종소리와 함께 대영광송이 울려 퍼졌다. 목요일 대영광송을 끝으로 사라졌던 종이 울리고 오르간 연주가 돌아와 장엄한 울림으로 부활을 축하했다. 어둠 속에 부활초의 불을 나눠 붙인 초를 든 행렬이 통로를 따라 장관을 이뤘다.
주례를 맡은 김진범 신부는 다함께 부활 축하 박수를 치는 것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유머가 있는 강론이었다. 예수는 요즘 유행어로 변증법의‘종결자’, 그것도 완전한 종결자라는 점에서 ‘완종남’이라고 말하자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정반합을 반복하는 세상의 변증법과 달리 예수의 부활은 영원하다”며 “예수가 죽음으로써 부활했듯이 우리도 겸손과 낮춤으로 열심히 죽음의 삶을 살자”고 했다.
세례 서약 갱신과 성찬전례로 미사가 끝난 시각이 밤 11시 30분. 2시간 반의 가장 길고 성대한 미사가 끝난 것이다. 드디어 축제의 시간, 성삼일의 대침묵이 끝나고 마음껏 기뻐하며 환호해도 좋은 시간이 열린 것이다.
곧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는 신학생 김승철 안토니오(28)는 “성삼일은 그리스도 신앙의 원점을 찾아가는 기간”이라며 “이로써 한 해를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미사 후 학생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신학생들은 피자와 콜라, 맥주로 간단한 파티를 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도 안 됐지만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이 더욱 기뻐한 것은 일요일 아침 미사를 마친 다음 수요일까지 주어지는 부활절 방학.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 학생들은 꿈 속에서도 즐겁게 달리지 않았을까. 그들이 평생 함께할, 사제이자 스승인 예수와 함께.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신학교의 일상
가톨릭 신학교는 사제(신부)가 되려는 학생들이 학부 4년, 대학원 3년의 7년 동안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며 봉쇄 생활을 한다. 사제 지망생들을 위해 신학교를 소개하는 성소주일과, 5월 축제 기간에만 개방한다.
수원가톨릭대 신학생들의 하루는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표가 꽉 짜여져 있다. 당번 학생이 복도에서 종을 흔들며 ‘베네디카무스 도미노(주님을 찬미합시다)’라는 외침으로 잠을 깨운다. 학생들은 ‘데오 그라시아스(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며 일어나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연다. 오전 7시 아침기도, 오후 5시 30분 저녁기도, 7시 30분 끝기도는 공동으로 한다. 기도와 식사 사이 오전과 오후 수업이 있다. 끝기도 후 다음 날 아침 묵상을 마칠 때까지는 대침묵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는 학부 1학년 때와 대학원 1학년 때. 신입생은 전화, 컴퓨터, 인터넷, 외출 모두 금지다. 매점도 출입 금지다. 2학년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허용된다. 외출은 일요일에 할 수 있다. 엄격한 규칙과 절제는 사제로서 살아갈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2학년을 마치면 군대에 간다. 복무를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하면 사제의 복장인 수단을 입는 착의식을 한다.
대학원 1학년은 영성 심화의 해다. 매순간 자신과 하느님의 1 대 1 대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집중 훈련기다. 이때부터 독방에서 지낸다. 평생 독신을 지켜야 하는 사제의 길을 익히는 것이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각자 떨어져 앉는다. 방학 중 한 달간의 피정은 매일 3~5시간씩 침묵을 지켜야 한다. 대학원 3학년이 되면 부제품을 받는다. 이때부터 사제다.
신학교는 입학이 어렵다. 입학 연한은 30세까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고, 소속 성당과 교구에서 세 번, 신학교에서 다시 세 번 면접을 해서 사제가 될 만한지 평가한다. 수원가톨릭대의 입학 정원은 100명이지만 올해 신입생은 45명밖에 안 된다. 졸업은 더 힘들다. 사제가 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재학 중 큰 잘못을 하면 1년 간 교구나 병원, 양로원 등 다른 곳으로 보내어 지켜본 뒤 다시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사제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군 복무 기간을 합쳐 평균 10년. 청춘의 가장 빛나는 때를 온전히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사제복인 검은 수단은 세속적인 죽음을 뜻한다. 7학년 최종관 펠릭스 부제(38)는 일반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 몇 년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신부로 사는 것은 행복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기는 힘들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면 좋은 사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청춘이다. 축구 등 운동도 하고 음악, 미술 등 동아리 활동도 한다. 성목요일 저녁 식사 후 신학생들의 대화에는 서태지와 이지아 이야기가 나왔다. 학생들이 낸 부활절 주보에는 여고생 가수 아이유에 대해, 왜 그에게 매혹되는지 미학적으로 고찰한 짧은 글이 실렸다. 그들에게도 아이유는, 청춘은 아름답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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