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카르멘은 자기한테 무심한 척 했던 얌전한 범생이과 군인, 돈 호세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그의 마음을 빼앗고는 마치 자유로운 새처럼 그를 떠나가려 한다. 그런 카르멘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돈 호세는 군대에서 탈영을 하고 산적이 되었다가는 마침내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점점 파멸해간다. 카르멘>
이렇게 치명적인 매력으로 돈 호세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악녀 혹은 자유분방한 집시여인, 카르멘은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팜므 파탈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옴므 파탈(Homme fatale)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남성'을 뜻하는 옴므(homme)와 '치명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파탈(fatale)의 복합어이다. 즉 옴므 파탈은 말 그대로 '치명적인 남자(deadly man)'로서, 저항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상대 여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부정적이고 숙명적인 남자를 뜻한다.
최근에는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옴므 파탈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고, 나쁜 남자가 자기의 이상형이라고 밝힌 여자 연예인들도 있다. 아마 옴므 파탈에 호감을 표하거나 매료되는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좋은 남자를 제쳐두고 왜 굳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그렇지만 카르멘과 돈 호세의 이야기가 말해주듯 팜프 파탈에게 빨려드는 남자, 옴므 파탈에게 끌려드는 여자는 옛날부터 있어왔다.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옴므 파탈에게 끌려드는 여성(팜프 파탈에게 끌려드는 남성도 마찬가지다)은 도대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 구원환상을 가진 여성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불쌍하고 애틋하게 여겨왔던 딸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남성을 선택해 그를 구원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그런 경향이 과해지면 나쁜 남자를 사랑의 힘으로 구원하겠다는 환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둘째, 얌전하고 소심한 자기 모습을 싫어하는 여성이다.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튀는 일은 하지 못하며, 더욱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거나 달려들지 못하는 여성은 그런 자기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다. 이 경우 옴므 파탈과의 연애는 자기 약점을 보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쁜 남자는 착한 여자를 통해 자기 약점을 보상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나쁜 남자-순둥이 여자, 나쁜 여자-순둥이 남자라는 불균형한 커플을 왕왕 목격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셋째, 무의식적인 자기파괴자 혹은 자기학대자일 가능성이 있다. 프로이트가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악마적인 힘, 즉 자기를 처벌하거나 파괴하기를 원하는 무의식적 소망을 가진 여성은 당연히 그것을 실현시켜줄 옴므 파탈에게 끌릴 것이다.
돈 호세가 결국엔 자살로 끝을 맺었듯이, 옴므 파탈이나 팜므 파탈에 끌리는 심리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 과정도 끝도 건강할 수 없다. 옴므 파탈에 대한 통제불가능한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한다면, 삼류영화와도 같은 공허하고 위험한 게임에 온 인생을 바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왜 옴므 파탈에게 이끌리는지를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그 치명적인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옴므 파탈이 마음에 든다면, 그 치명적인 매력에 사로잡히기 전에 치료나 분석을 받아보라!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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