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는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 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 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 몸이 피곤할 때 가끔 가위를 눌린다. 기를 쓰며 몸을 움직여 보려 하나 도통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는 것은 아닐까, 안간힘을 써 본다. 그러면서 기도만 유지해도 죽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입을 크게 벌려본다. 간신히 잠에서 깬 후 성경책을 머리맡에 놓아 보기도 한다.
며칠 전 새벽이었다. 나는 가위를 눌리고 있었다. 가위를 눌리면서 평소와 달리 소리만 치면 살아날 것 같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이제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작게라도 소리만 치면, 흔들어 깨워 줄 사람이 있다고, 가위눌림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가위눌림 같은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눈물을 머금은 신이시여, 눈물만 머금고 있지 말고 이 가위눌림 같은 현실을 깨워, 드맑은 세계를 열어주소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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