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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리창에 부딪친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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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리창에 부딪친 새들

입력
2011.04.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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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사찰 입구의 한가한 자리에 서쪽을 향해 기와집으로 찻집을 한 채 지었다. 한쪽 벽에 큰 통유리를 끼워 안팎이 시원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고전적인 모양은 아니지만 근래 산사의 전통 찻집에서 많이 채택하는 모양이다. 집을 지은 목수들이 나무로 투박하고 수수한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주어서 운치를 더하였다.

오후 서너 시쯤 해가 조금씩 기울어 갈 때면 유리창 옆자리에 앉아 한 잔의 차를 즐기곤 한다.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산과 나무와 꽃과 풀은 직접 보는 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한 장의 유리창의 거리만큼 아스라한 호기심과 은근한 흥겨움이 일어나곤 한다. 멀리 보이는 바다의 붉은 석양과 햇살도 훨씬 따뜻하게 전해지는 기분이다. 잠시 몇 발짝 걸어 나가면 신선한 자연의 공기와 바람결, 그리고 꽃과 나무, 풀들이 쏟아내는 향기와 냄새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창 뒤에 몸을 숨긴 듯한 묘한 감상을 은근히 즐기게 된다.

창문 앞쪽 정중앙의 멀지 않은 위치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 내린 폭설에 한쪽 가지가 꺾여서 상처를 입은 흔적이 있지만 당당하고 근사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이 소나무가 좋은 경치를 가린다고 생각했었다. 이 소나무만 없으면 저 너머 들판과 호수, 그리고 산과 바다가 훨씬 더 시원스럽게 보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어졌다. 이 멋진 소나무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저 뒤쪽의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투명한 유리창도 가림의 멋이 있고, 우뚝 선 소나무도 틔워 보이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찻집을 열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걱정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찻집의 유리창에 새들이 날아와 자꾸 부딪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잠시 떨어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서 날아가곤 하지만 간혹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숨지는 새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웠으면 하고 지어 놓은 찻집에 애꿎은 새들이 희생되고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그렇게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 새들의 시각은 많이 다른가 싶었다.

주변을 살피고 관찰해보니 유리창에 비친 소나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새들이 잘 부딪치는 시간에 유난히 소나무가 투명하고 깨끗하게 비치는 것이었다. 신라시대 솔거가 황룡사(皇龍寺) 벽에 그린 노송도(老松圖)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쳐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더니, 유리에 비친 소나무에도 새들이 날아드는가 싶었다. 더 이상 새들이 다쳐서는 안 되겠고 햇빛도 가릴 겸해서 가리개를 설치하였다. 이후 더 새들이 날아와 부딪치지는 않지만 이미 다치고 죽은 새들에 대한 빚은 다 갚지 못한 것 같다.

새와 사람의 눈이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나와 사람들은 충분히 즐겁고 만족할 수 있지만 다른 생명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지며 장난하며 노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가 연못 속 생명들에게는 바윗돌이 날아오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일이 비단 사람과 새의 관계에서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상대보다 큰 힘을 가진 존재가 내가 옳다는 편견과 독선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일은 사람과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와 존재들의 관계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일이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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