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에 들어가기 전날인 16일, 부산저축은행 대표와 감사는 오전 일찍 유동성 부족에 의한 영업정지 신청을 의논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금융당국은 사태의 파장을 감안해 자체 정상화 방안을 먼저 요구했고, 부산으로 돌아온 대표는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 대전, 중앙부산, 전주 등 5개 계열 저축은행에 대해 모두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임직원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대량예금인출(뱅크런)이 발생한 것은 대전저축은행인데 나머지도 영업정지가 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의했고, 대표는 다시 서울에 올라와 감독당국에 부산과 대전 두 곳만 우선 영업정지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저축은행은 유동성이 충분히 있는 만큼 일단 자체적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다음날 아침 7시30분 부산과 대전, 두 저축은행에 대해서만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영업정지 신청과 관련해 부산저축은행과 금융당국 사이에 협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이미 이 회사 임직원들은 곧 영업정지가 내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인척이나 특별히 관리하는 고객에게, 이 중요한 정보를 따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오후 들어 예금 인출 고객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이 단순히 친인척에게만 연락했는지, 우량 고객에게도 연락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금융감독원도 "VIP고객에게까지 알려줬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지만, 평소 자신이 관리하는 핵심고객이었다면 연락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날 인출 금액은 평소의 3배에 달했다.
정보를 빨리 입수한 고객의 인출 행렬은 초량동 본점의 경우 대체로 저녁 8시 정도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고객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직원들은 실명 확인 없이 전산 작업만으로 지인들의 예금을 해지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 본점에 파견돼 있던 금감원 감독관들은 이 상황을 보고 불법 인출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 저녁 8시50분께 이를 금지하는 공문을 작성해 부산저축은행 대표에게 보냈다. 공문 내용은 "고객이 내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이 고객 예금을 무단으로 인출해 고객 계좌로 송금하고 있는데 이를 신속히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속수무책이었다. 본점은 밤 9시30분, 기타 지점은 10시까지 예금 인출이 계속됐다. 수백명의 고객들 계좌에 불법 해지된 돈이 입금되는 사이, 30만명의 다른 고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 '영업정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금감원 파견 감독관이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영업정지 정보 유출과 불법적인 인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5일 야당과 시민단체가 일제히 성명을 내는 등 비난이 빗발쳤다. 저축은행에 '빽'이 있는 사람만 돈을 찾고, 대다수 서민고객들은 예금이 묶이는 상황에 대해 예금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감독당국으로도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예금 인출과 대출에 대해 영업정지 이전이라도 제제를 할 수 있지만, 유동성 부족에 따른 자발적 영업정지 신청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영업 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므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금융위를 열어 영업정지를 결정했어야 위법한 사전 인출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감원은 "영업정지 시 사전 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해 제도 개선을 통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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