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시엔’(甲子園)이라 불리는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지난 40년간 국내 유일의 지역예선 없는 통합 토너먼트 대회로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업야구선수의 신분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등록한 사실 여부로 결정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였다.
해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 중 마지막으로 열렸던 봉황대기는 모든 고교팀이 아무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각종 이변이 속출하는 명승부가 연출되며 ‘전국구 스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1971년 제1회 대회에서는 무명의 김재박(전 LG 감독)이 활약한 대광고가 당대 고교 최고 스타 윤몽룡(작고)이 이끄는 강호 중앙고를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초록봉황은 경북고에 돌아갔다. 당시 경북고 에이스 남우식은 54이닝을 완투하면서 2실점만 하는 전무한 기록을 남겼다. 1972년 2회 대회에서도 윤몽룡은 2회전에서 무려 16회까지 가는 연장 승부를 1-0 완봉승으로 이끄는 ‘철완’을 과시했다.
‘국보 투수’선동열(전 삼성 감독)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도 사실상 봉황대기였다. 1980년 10회 대회에서 광주일고의 선동열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대구상고 이종두(한화 수석코치)는 고교야구 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휘문고 박정혁은 1989년 19회 대회에서 공주고 1학년이던 박찬호(오릭스)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뒤 다음날 진흥고와의 첫 타석에서도 홈런을 때려 고교야구 사상 첫 4연타수 홈런의 진기록을 수립했다.
봉황대기 최다 우승팀은 충남의 강호 천안북일고로 총 5차례 정상에 올랐다. 뒤를 이어 대구고가 지난해 군산상고에 연장 10회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두고 4번째 초록봉황을 품에 안았다. 대구고는 마지막 봉황대기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성환희기자 hhus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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