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5월 27일까지 모두 돌아오는 데 이어 일제강점기에 불법 반출되어 일본 궁내청이 소장 중인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1,205권도 5월 말이나 6월 초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한일 도서 반환 협정이 이변이 없는 한 내달 11일께 일본 국회에서 비준될 전망이다. 비준을 마치면 바로 돌아오게 돼 있다.
한일 도서 반환 협정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된 도서를 반환(일본 측 표현은 인도)하겠다는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지난해 8월 담화에 따라 11월 14일 체결됐으나 일본 제1야당인 자민당의 반대와 3월 도호쿠대지진으로 비준이 늦어졌다. 그러던 자민당이 최근 비준 심사와 표결에 참여하기로 함에 따라 중의원(하원) 외무위원회가 심사에 착수, 18일과 22일 두 차례 심사에 이어 27일 외무위 표결, 28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명당이 반환에 찬성하고 있어 통과될 것이 확실하다. 비준 절차는 내달 11일께 열리는 참의원(상원) 본회의 표결로 마무리된다. 참의원이 반대해도 일본 헌법의 중의원 우선 원칙에 따라 즉각 발효된다.
2006년부터 궁내청 도서 반환 운동을 해온 시민 단체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의 이상근 실행위원장은 "22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 심사를 참관했는데 자민당 의원 한 명이 한국 내 조선총독부 도서를 거론하며 '반환이냐 인도냐'를 물었을 뿐 반대 목소리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분위기로 보아 내달 21, 22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부를 갖고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돌아오는 궁내청 도서는 조선왕실의궤 81종 167권을 비롯해 규장각 도서 66종 938권, <증보문헌비고> 2종 99권, <대전회통> 1종 1권 등 150종 1,205권이다. <증보문헌비고> (1908)는 우리나라 역대 문물을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고, <대전회통> (1865)은 조선 시대 마지막 법전이다. 대전회통> 증보문헌비고> 대전회통> 증보문헌비고>
이 가운데 의궤와 <증보문헌비고> 는 조선총독부가 1922년 궁내청에 기증한 것이고, 나머지 66종 938권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6~9년 '한일 관계 조사 자료로 쓰겠다' 며 조선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등에서 빌려간 것이다. 증보문헌비고>
이번 반환에서 대한제국 제실도서와 임금의 교재인 조선 초기 경연도서는 제외됐다. 반환 협정이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된' 도서로 한정돼 있어 한일 강제병합 이전에 반출된 책은 해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토가 가져간 책은 11종 90권이 더 있는데, 이 책들은 65년 한일 문화재협정에 따라 반환됐다. 이번 반환분 가운데 <무신사적(戊申事績)>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등 6종 28권은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다. 또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여사제강(麗史提綱)> <동문고략(同文考略)> 등 7종 180권은 국내 도서와 판본이 다르거나 국내에는 일부만 있는 것이어서 이번 반환으로 유일본 전질을 갖추게 되었다. 동문고략(同文考略)> 여사제강(麗史提綱)>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 무신사적(戊申事績)>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외규장각의궤가 대부분 왕이 보도록 최상급으로 만든 어람용인 데 비해 일본 궁내청 의궤는 오대산사고 등에 나눠 보관했던 것이라 어람용만큼 뛰어나진 않고 국내에 복본이 있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환수 운동이 거둔 첫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는 크다.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가 정부간 협상 끝에 돌아오게 된 것과 달리 일본 궁내청 도서 반환은 처음부터 민간이 주도했다. 이 책들 중 절반 이상이 오대산사고에 있던 것이고 오대산사고를 월정사가 관리했던 인연으로 불교 조계종이 앞장섰다.
월정사, 봉선사,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축이 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는 궁내청 도서가 돌아오는 대로 서울 광화문과 오대산사고 등에서 대대적 환영 행사를 열 계획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환수운동 주역 혜문스님
궁내청의 조선 왕실 도서 반환을 이끈 주역은 혜문스님이다. 경기 남양주의 광릉 봉선사에 있던 그가 이 운동에 나선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인 2004년, 이 도쿄대학에 있음을 알고부터다. 2006년 3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출범했고 그해 7월 도쿄대가 서울대에 이 책들을 기증해 돌려받는 성과를 거뒀다. 다음 목표는 궁내청의 조선왕실 의궤였다. 그해 9월 조선왕실 의궤 환수위원회가 출범했고, 그는 사무처장을 맡아 수 차례 일본을 왕래한 끝에 반환을 성사시켰다.
일본 중의원의 한일 도서 반환 협정 비준안 처리를 참관하기 위해 21일부터 일본에 머물고 있는 그는 반환 운동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우리 안의 패배주의를 꼽았다. “다들 안될 거라고 생각했죠.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게 한일 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으니까요. 관심도 후원도 적었어요. 정부가 일본 왕복 항공료를 몇 번 대준 일은 있지만. ”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반환 협정 비준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기뻐했다.
그는 해외로 불법 반출된 또다른 문화재의 환수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박물관에 ‘문정왕후금보’(도장)가 있는 것을 지난해 미국국가기록보존소에서 확인했어요. 한국전쟁 때 미군이 약탈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정부는 그게 거기 있다는 것만 알았지 유출 경위를 몰랐어요. 저같은 사람이 알아낸 것을 정부가 몰랐다는 건 한마디로 관심 부족 아닙니까.”
그는 내달 11일께 일본 국회의 도서 반환 비준안이 최종 통과되면, 도쿄 현지에서 이를 축하하는 행사를 갖고 28일 귀국해 경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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