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이야기 한다? 선입견이 따른다. 과연 재미있을까.
사회적 목적을 분명히 둔 영화의 경우 재미는 뒷전이기 마련이다. 민감한 소재의 진지한 전달을 즐거움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불경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다섯 번째로 제작한 인권 옴니버스영화 ‘시선 너머’는 메시지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쏠쏠한 재미와 함께 성찰의 기회를 선사한다.
영화는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냉소적 시선을 비판한 ‘이빨 두 개’(감독 강이관), 모텔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여성의 연대를 그려낸 ‘니마’(감독 부지영), 직장 상사의 성폭력과 폐쇄회로(CC) TV의 비인간성을 다룬 ‘백문백답’(감독 김대승),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풀어낸 ‘바나나 쉐이크’(감독 윤성현), 개인정보의 무단 유출을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본 ‘진실을 위하여’(감독 신동일)가 바통을 주고받는다.
다섯 편 모두 꽤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스타까진 아니어도 한국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감독들답다. 인권이라는 주제를 두고 만만치 않은 연출력을 지닌 감독들이 백일장을 펼치는 듯한데 스크린 뒤에 흐르는 경쟁심이 느껴져 흥미롭다.
다섯 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것은 ‘바나나 쉐이크’다. 이삿짐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봉주(정재웅)와 필리핀 이주노동자 알빈(검비르)의 위태로운 우정을 그렸다. 이삿짐을 옮기다 집주인의 보석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숨겨진 갈등과 유쾌한 봉합이 재기 넘치는 연출로 전해진다. 이주노동자를 전과자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 선하면서도 악하고, 이기적이면서도 타인에 대한 연민을 지닌 인간의 다면성을 포착해 낸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에 유머를 양념으로 구사하며 완급을 조절하는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윤성현 감독은 지난달 3일 개봉한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1만 관객을 모았다. 1만명은 보통 독립영화 흥행 성공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CCTV에 의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모습이 세 편에서 등장하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보안을 위해 채택된 도구가 훔쳐 보기라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통제의 장치로 활용되는 모습은 역시 끔찍하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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