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첫 해인 1986년 우리는 경쟁 상대가 버려둔 주변 시장에서 숨어서 영업을 했다. 신기루 초음파인 'SA-3000'은 사실은 한 해 이상 더 다듬어 출하했어야 했으나 당시 우리는 그러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 파느냐, 문 닫느냐 그것이 문제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업 첫해인 30대를 팔아 모양상은 흑자를 달성하였다. 당시 최초의 영업 사원 이장용(현 한신메디칼 전무)군은 용감한 애국자인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인가? 지금도 정답은 모른다.
냉엄한 시장의 현실에 직면한 메디슨의 '미치광이'들이 드디어 양보한 것이 첨단 기술이나 아직은 미완성인 연속 집속 기술은 당분간 접어두고 구현이 용이한 기존의 기술로 전환한 것이다.
1987년 'SA-3000A'는 이승우(전 메디슨 사장) 박사를 중심으로 조영신(현 메디코어 사장), 김국진 등의 피땀으로 개발되어 1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였다. 당시 숨겨진 이야기 하나 공개하자면, 신기루 초음파인 첫 제품을 무상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일부 병원에서는 내용도 모르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감사합니다.'
1987년 메디슨은 시골에서 중소도시로 진출 거점을 확보하였다. 중소도시에서도 주로 초음파 진단기을 사용해 보지 않은 의사들을 가르쳐서 판매하였다. 이를 위하여 메디슨 레이디라는 이름으로 미모(?)의 아가씨들을 초음파 실습 교사로 동원한 것이 주효한 것도 사실이었음을 밝혀둔다.
이후 메디슨의 글로벌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 교육용 책자 등 교육과 영업의 통합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메디슨이 정면으로 세계적 기업들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숨어 다니는 지하철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번 더 제품의 혁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2년간 준비를 마치고 1988년 드디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진출하였다. 정면 승부인 것이다. G사, T사 등 해외 강자들은 우리를 보자 마자 강력한 스트레이트 공격을 해왔다. 단숨에 제품가를 30%이상 낮춘 것이다. 우리도 대응하여 가격 인하에 돌입했다. 그러자 다시 가격 인하로 공격해 왔다.
피 튀기는 한판 전쟁은 조병일(현 M2컴뮤니티 사장), 임영순 등 마켓팅 포병들의 지원 하에 김용백(용메디칼 사장), 안인규(인메드 사장) 등 용맹한 영업 사원들이 보병 전투로 전진 또 전진하였다. 결국 1988년 메디슨은 3배의 영업 신장을 이룩하며 대도시 공략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영업을 진두 지휘한 정성훈(큐메드 사장)군이 왜 현대 그룹에서 이적해 왔는가는 미스터리이다.
1990년 드디어 장성호(현 삼성 상무)박사, 조동식(전 에코넷 사장)군 등이 가세하여 개발한 'SA4500'이라는 신제품으로 개업의 시장에서 선두로 부상하였다. 당시 영입한 권용기(현 메디너스 사장)차장은 국내 시장 장악을 진두 지휘하고 창업 그룹인 이승우 박사와 조영신군은 연구 개발을, 정만돌 군은 생산을, 김국진군은 서비스를 맡아 메디슨 신화의 첫 번째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메디슨의 국내 시장 석권은 기술만이 아니라, 영업 서비스 관리의 총체적인 협력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뜻있는 의사 분들의 도움이 천사처럼 다가왔다. 서울대 병원의 문신용 교수, 전 전북대 총장을 지내신 두재균 교수 등의 헌신적인 지원은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되었다. 사실 이 분들은 자칫 메디슨 영업사원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었으나, 영업 사례금을 드린 적이 없다는 점에서 영업사원은 분명 아니었다.
이후 메디슨이 국내 최고 기업 삼성과 세계 최강의 의료기 회사인 GE의 합작사인 삼성GE를 압도적 차이로 제압하고 국내 시장 1위를 고수하게 된다. 그 차이는 브랜드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고 제품도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취약한 메디슨이 삼성GE를 누르고 초음파 시장을 석권한 것은 바로 치열함이었다고 본다. 그 치열함의 뿌리는 공유된 메디슨 문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메디슨 문화는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지원한다'는 기업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 가치(국부 창출)와 사원가치(인간 존중)의 결합에 있으며 이를 선순환 통합하는 비밀이 바로 도전에 있다는 것이다. 도전을 통하여 인간과 업적이 통합되고, 교육과 업무가 통합되고 혁신과 유지가 통합된다는 도전의 메디슨 철학이었다. 이 도전을 한국인의 신바람으로 승화시키는 관리 체계가 '보이지는 않는 관리'라는 메디슨식 목표관리다. 도전을 통한 업적 달성과 자아 완성이다. 이 메디슨 문화는 사내 서적으로 나와 수많은 벤처 기업에 전파되어 벤처 문화의 DNA 전파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메디슨의 직원들은 그냥 직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가 사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원 300명의 메디슨에서 100명의 사장이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그 중 6개 사는 상장했다.) 바로 치열한 기업가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신바람 문화에 미친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국내 시장을 창업 5년만에 석권한 역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메디슨 문화의 기원은 다음 회에 소개할 필자의 직장 경험에서 비롯함을 미리 알려드린다.
"생명의 환희와 경이에는 아픔이 자리한다. 새로운 시초는 혼돈으로 시작한다. 메디슨의 탄생은 모순을 극복하는 역리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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