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장애인의 날(4월20일)’ 행사에 참석할 장애인들을 선정하면서, 1급 지적장애인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모 장애인 시설장은 “지적장애 1급은 빼달라”는 복지부의 요구에 반발,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26일 서울시내 장애인 이용시설 운영자들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초청으로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애인 초청 오찬을 준비하며, 주요 장애인 시설에 참석자 명단을 작성해서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내 장애인 복지시설 A원장은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지적장애 1ㆍ2급 장애인 2명을 추천했다. 그런데 복지부 직원이 “1급은 소란을 피우거나 어수선하게 하면 곤란하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달라”고 요구했다. A원장은 격분했고, “그렇다면 안 가겠다”고 통보했다. 이런 사실이 장애인 시설 사이에 전해지면서, 크게 공분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A원장은 소아마비로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30년 가까이 중증 지적 장애인들을 위해 일해왔으며, 사회적으로도 꽤 이름이 알려진 복지활동가다.
A원장은 한국일보가 통화를 시도하자 “장애 급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의 능력이나 성품이 중요한 것인데, 1급이라고 오지 말라니 너무나 화가 났다”고 착잡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지난 일이니 이제 와서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그런 요구를 했던 복지부 직원도 내가 화를 내니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그분 자신도 장애인이라고 하시더라, 아마 지체장애인이신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장애인 사이에서도 차별이 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고 다시 강조했다.
“지적장애 1급 아이를 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장애인의 날 행사를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지, 또 장애의 특성상 중증 지적장애인이 소란을 좀 떤다고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발상을 다른 부서가 했다면 막아야 할 복지부가 앞장서서 한 것은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이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얌전하고 조용한 장애인들만 초대해야 한다면 그런 행사를 왜 하느냐”며 “장애의 특성상 판단력이나 인지력이 부족한 지적ㆍ자폐성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 못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살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하고 차별한 것”이라고 말했다.
1급 지적장애인을 제외하라는 방침이 복지부 차원에서 정해진 것인지, 청와대가 요구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그런 방침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복지부 담당 부서 과장은 “청와대 행사는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이 다 정해져 있어서, 개별 장애인분들의 서운함을 헤아리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장소문제로 초청 장애인이 200명에서 150명으로 줄어들면서 인원을 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A원장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직원을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복지부의 입장을 전해들은 A원장은 “(인원을 줄이라는 뜻이) 전혀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복지부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진희 기자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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