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지배구조다. 대기업(재벌)을 향해 공세수위를 높여온 정부가 '부의 대물림'문제에 이어 이번엔 가장 민감한 부분, 지배구조 이슈를 꺼내 들었다. 지난 해 친서민ㆍ동반성장 드라이브 이후 MB정부의 정책기조에 의구심을 키워왔던 재계도 더 이상 불만을 감추려하지 않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사이 좋게 시작했던 MB정부와 재계는 이제 사실상 결별수순을 밟는 분위기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은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및 지배구조 선진화' 토론회에서 "거대권력이 된 대기업에 대한 제도적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토론회에서 작심한 듯 거친 표현도 마다 않았다. "▦대기업이 미래전략사업 대신 중소기업업종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으며 ▦대기업 위주의 과점체제와 수직계열화가 경제 전체의 창의력과 활력을 떨어뜨리고 ▦내부유보에만 힘쓸 뿐 성장동력 투자에는 불안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한금융과 포스코, KT 등을 방만 경영사례로 적시했고, 심지어 국내 최대기업 삼성전자에 대해선 이건희 회장의 지분까지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곽 위원장은 이 같은 재벌지배구조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기업의 거대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시장의 취약한 공적기능을 북돋울 '촉진자' 역할을 연기금이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는 즉시 "곽 위원장의 사견"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희정 대변인은 이날 "발표 내용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나 보고가 없었으며 앞으로 논의해 봐야 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계는 곽 위원장의 발언이, 작년 8ㆍ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 핵심 국정지표로 제시한 이후 내놓은 일련의 정책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동반성장ㆍ상생기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성화되는 양상. 연초 이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으로 시작된 석유가격조사, 2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발언, 중소기업의 기술을 뺏는 대기업에 손해액의 3배를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지난달 말에는 재벌들의 오너일가 소유 비상장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을 발표하면서, 변칙 상속ㆍ증여를 통한 부의 대물림 관행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배구조 문제까지 건드리자, 재계의 반발도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경제단체들은 이날 곽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연기금을 통한 기업 견제는 연금사회주의와 다름 없다"(한국경영자총협회 황인철 본부장)며 원색적 어조로 반박하고 나섰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 흐름이라면 집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정부와 대기업간 긴장강도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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