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포룸광장의 카페테라스’(1888)에 영향을 준 일본 목판화가 전시된다. 고흐는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가 그렸던 ‘에도100경: 사루와카 거리의 밤 풍경’(1857)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푸른색의 밤 하늘과 노란 달빛이 닮았고, 소실점 등 구도가 비슷하다. 고흐는 ‘탕기 영감의 초상’이라는 작품 배경으로 일본 우키요에(목판화)를 그릴 만큼 일본 미술의 색채와 평면성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프랑스박람회에서 소개된 일본 미술에도 관심이 컸다.
서울대미술관이 고흐의 ‘포룸광장 카페테라스’ 등 일본 고베시립박물관 소장품 80여점으로 꾸린 ‘근대 일본이 본 서양’전을 내달 29일까지 열고 있다. 17, 18세기 유입된 서양 문물이 일본에 미친 영향과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전시는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본 미술이 다시 서구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준다.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으로 일본 근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근대 일본 미술은 나가사키항에서부터 시작된다. 1639년 에도 막부(1603~1868)는 오로지 네덜란드 중국과의 교역만을 허락했다.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서적, 서화, 진귀한 새와 짐승 등 외래문화는 유일한 교역항이었던 나가사키를 통해 전파됐고, 나가사키는 에도시대의 문화적 선구 도시로 발전했다. 막부가 고용한 화가들은 서구로부터 들여온 진귀한 새나 짐승, 천문 기기를 정밀하게 그려 막부에게 바쳤고, 화가들은 이러한 사생도를 기초로 아름다운 작품이나 선물용 판화를 만들어 냈다. 또 이때 중국 명화 자료를 수입하기 위해 초빙한 중국 화가 심남빈(1682~1760)의 화풍도 유행했다. 섬세한 묘사와 선명한 채색이 특징인 그의 화풍은 이후 서양의 원근법 등을 받아들이는 밑바탕이 됐다.
네덜란드 서적에 나오는 삽화를 흉내 내며 일본 미술은 더욱 발전했다. 당대 대표 화가 소 시세키(1715~86)는 더 나아가 독자적 화풍도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 ‘포도도’는 쪽빛 화면 안에서 익어 가는 포도의 느낌을 잘 살려 냈다. 여백의 미와 선비의 지조 등을 강조해 왔던 동양적 화풍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어 당대 화가 우타가와 구니요시(1797~1861)의 작품도 흥미롭다. 그는 ‘24명의 효자 이야기’를 삽화로 그리면서 환상적인 이국의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했다. 가령 그의 작품에 묘사된 푸른 하늘, 야자수, 휘장, 터번을 두른 남성, 뭉게구름 등은 그가 네덜란드 서적의 삽화를 보고 그린 것이다.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흔적들이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다. 도리 기요타다의 ‘가부키 극장의 내부’(1794)는 서양화풍인 투시도법을 강조해 가부키극장의 실내 건축을 묘사했다. 그림 속 미닫이에 비친 사람 그림자 실루엣도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의 한 부분. 이 작품의 묘미는 그림 앞쪽의 한 사내가 액자 밖으로 나오려고 손을 걸친 데에 있다. 회화의 화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관객을 그림으로써 2차원의 평면을 깊은 3차원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본인의 근대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 슬라이드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그림 감상 장치 ‘메가네에’도 단연 구경거리다. 에도시대에 수입된 물품인 메가네에는 검은색 칠기 상자에 볼록 렌즈를 끼워 넣어 여섯 장의 그림을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도구다. 일본 전역에 단 하나뿐인 장치로 이번 전시를 끝으로 대여가 금지된다.
가지모토 히데오 고베시립박물관장은 “서양에서 기원한 사실적 표현의 소화, 또는 해부학 서적의 번역, 삽화 학습으로 일본 근대미술의 독특한 화풍이 완성됐다”며 “이 전시를 통해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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