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도로교통법은 고장이나 사고로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되면 뒤따르는 차량을 위해 빛 반사체가 붙은 삼각대를 차량 뒤편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낮에는 차에서 100m 이상 뒤쪽 차로에, 밤에는 200m 이상 뒤에 설치해야 한다. 삼각대 설치에 대한 경각심은 지난해 7월3일 인천대교 영종IC 부근에서 공항버스가 고장으로 멈춘 차량과 충돌한 뒤 도로 아래로 추락해 승객 1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며 부쩍 높아졌다. 당시 고장차량 운전자는 후방에 삼각대를 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삼각대 판매량은 껑충 뛰었고, 손해보험협회와 도로교통공단 등은 무료로 삼각대 나눠주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는 이달 7일부터 한국도로공사 등과 합동으로 고속도로 '위급차량 신속수비'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고장이나 사고로 차량이 멈추면 순찰차가 신속히 출동해 후속 차량에 의한 2차 사고를 막는 것이다. 경찰과 도로공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도로공사 콜센터나 112로 신고하도록 운전자에 대한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경기경찰청 관내 고속도로 전광판 160여 개도 '차량은 갓길로, 운전자는 가드레일 바깥으로'라는 문구를 쉴새 없이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삼각대를 설치하라는 안내는 없다.
운전자들은 혼란스럽다. 법은 삼각대를 설치하라고 하는데, 사고 즉시 가드레일 바깥으로 피하라는 경찰 조치를 따르자면 삼각대 설치는 불가능하다. 고속도로 운행이 잦은 회사원 송모(35)씨는 "사실 삼각대를 들고 100m 이상 고속도로 갓길을 걷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지난해 다들 구입하기에 삼각대를 샀지만 요새 분위기를 봐서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신속수비를 시작한 것은 끊이지 않는 후속 차량 사고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오전 1시38분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안성휴게소 부근에서 기름이 떨어진 화물차 운전자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보험회사 직원이 다른 화물차에 치어 숨지는 등 올 들어 경기도에서만 후속차량으로 인한 사망자가 6명이나 발생했다.
신속수비가 도로교통법과 상충되는 점은 인정하지만 운전자 안전을 위한 시책이라는 게 경찰 입장이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화물차가 고속도로에서 멈춘다면 삼각대 설치가 필요해 보이지만 승용차의 경우는 삼각대를 세우러 가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도로공사 등 유관기관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라 삼각대 설치 필요성에 대한 결론이 곧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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