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이 요동치고 있다. 북부의 튀니지와 이집트가 재스민 혁명을 통해서 수십년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며 다른 나라들이 민주화 열풍에 격동의 시간을 맞고 있는 것. 리비아는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유엔까지 개입하고 나섰지만 그 누구도 끝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중서부의 코트디부아르도 지난 5개월여동안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1월 국민투표에서 남북 분리 독립을 이뤄낸 수단 역시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일으키는 유혈충돌 등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16일 대선이 치러진 나이지리아에서도 결과를 둘러싸고 남북 간 유혈충돌이 벌어져 5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서아프리카의 내륙 최빈국 부르키나파소도 일부 군인이 반란을 일으켜 혼란스런 상황이다. 남부 짐바브웨도 2008년 이후 지속된 정치적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아프리카 전역이 정치ㆍ사회적 불안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다.
대선만 17개국, 선거가 갈등의 씨앗
올해 아프리카가 이처럼 요동치고 있는 것은 장기 독재, 부정부패, 경제적 낙후성 등 여러 가지 원인이 거론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집중된 데에 가장 큰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대선에서 남부 기독교계 굿럭 조나단 현 대통령이 승리하며 이에 반발한 북부 무슬림과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우간다 반정부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식료품 가격 급등에 대한 반발이지만 지난 2월 4번째 연임에 성공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에 대한 반감의 성격이 더 강하다. 지난달 13일 대선을 치른 베넹은 부정선거 논란 끝에 결국 헌법재판소가 야이 보니 대통령의 연임을 인정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내전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8일 대선을 치른 지부티에서도 지난달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대통령의 3선 연임을 위한 헌법 개정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 2명이 숨졌다. 분리독립 국민투표가 치러진 수단과 내전을 겪은 코트디부아르의 혼란도 모두 선거가 계기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가 올해 대륙 전역에서 봇물을 이룬다는 점이다. 올해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대선을 치렀거나 치를 예정인 곳은 17개국이나 된다. 총선과 지자체 선거, 헌법개정 국민투표까지 합하면 이 숫자는 30개국으로 늘어난다.
특히 짐바브웨의 경우 2008년 대선에서 30년 넘게 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창기라이 총리에 패배한 뒤 불복, 유혈 사태를 빚었던 전례가 있어 요주의 대상이다.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현재 무가베 대통령과 창기라이 총리의 연정이 지속되고 있지만, 양측 간 갈등은 여전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 5월부터 개헌안 국민투표에 이어 대선과 총선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권 연장을 노리는 무가베 대통령은 '피의 다이아몬드'를 자금 삼아 권력 장악에 나설 전망이다. 차드, 르완다 등 일부 국가들도 극심한 여야 대치로 각종 선거가 1~3차례 연기될 정도였다.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아프리카 전역을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다.
장기집권ㆍ경제난ㆍ학습효과, 3대 위험요소
선거 외에 장기집권도 아프리카 국가들을 혼란으로 치닫게 하는 요소다. 특히 정치 후진국이 즐비한 아프리카에서는 장기 집권이 일상화해 있다. 이미 대선을 치른 나이지리아, 우간다, 베넹, 지부티 등은 모두 현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이러한 장기 집권은 부족, 지역, 경제력 등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또 상대편은 소외와 차별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장기 집권에 대한 저항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또 장기 집권을 한 데다 지지층도 확고할 경우엔 선거에 지고도 결과를 부정하며 혼란을 야기하기 십상이다.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와 짐바브웨의 무가베가 대표적인 예다.
경제난 역시 격동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아프리카 반정부 시위는 사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게 핵심이다. 나이지리아도 석유 생산지가 몰려 있는 부유한 남부의 기독교 출신 조나단의 승리에 상대적으로 가난에 찌들었던 북부의 박탈감이 유혈 충돌로 이어진 것이다. 우간다 혼란이 식료품비 급등에서, 부르키나파소의 군대 반란이 주머니가 빈 군대 엘리트에게서 출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아프리카 국가에 "선거 기간 동안 지출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과다한 선거비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저항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IMF의 우려다.
학습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랍권 반정부 시위의 추이를 옆에서 줄곧 지켜 본 아프리카 국민들이 이에 자극 받아 저항 운동을 펼칠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1년의 아프리카가 격동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제3의 변수 '외세 개입'
격동기를 맞은 아프리카에는 복잡한 내부 사정 외에도 제3의 변수가 있다. 바로 서방국가 등 외세의 개입이다. 그러나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려운 상태다. 프랑스와 영국 등의 군사개입에도 리비아 사태는 교착 상태이고,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 축출 이후에도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군사 개입이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이란 ‘명분’과는 달리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 측면이 큰 탓이다. 격동의 아프라카에 대한 해결책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서구 세력이 가장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나라는 리비아다. 지난 2월 15일 시작된 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국제사회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에 대한 제재에 착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한 연합군 공습에 나섰다. 그러나 유엔 개입 2달이 지나도록 리비아 내전은 마무리되긴커녕 오히려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상황이다. 리비아에 대한 강대국간 이해관계 충돌로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방국가 중에선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군사 개입을 주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자 사설을 통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은 리비아 개입에 소극적이다. 전쟁 비용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리비아 석유에 큰 이권을 갖고 있지도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개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리비아와 무기수출 계약을 맺은 상태고, 중국은 아프리카 진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면서 리비아 내전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사태 역시 외형상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체포 이후 사태가 종식된 것처럼 보이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특히 그바그보 근거지인 아비장 시민들은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 저널리스트인 파라이 세벤조는 지난 13일 BBC방송에 출현,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 내전에 서방이 개입한 것은 한편의 촌극”이라며 “이 두 나라에 갑작스런 평화가 찾아오진 않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럼에도 서방의 간섭을 받는 아프리카 국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정부 시위로 유혈 충돌이 빈번한 수단, 부르키나파소는 물론이고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32년째 통치하고 있는 짐바브웨도 이러한 대열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짐바브웨는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 국가원수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사력을 앞세운 서방의 개입이 과연 아프리카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도 미지수다.
신정훈 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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