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이다. 세상에는 참 '날'도 많다. 어제는'지구의 날'이었고, 사흘 전 20일은'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렇게 온갖'무슨 날'을 만들어 떠들수록 그'무슨'이야말로 구박받고 있으며, 갈수록 위기와 퇴조의 운명을 맞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신문의 날'(7일)이 그렇고,'책의 날'도 마찬가지다. 불과 17년 전만 해도 없던'날'까지 굳이 만들어 권장도서를 정하고, 이런저런 행사를 열어 책을 읽자고 요란을 떨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라지만 읽는 도구, 지식과 학문의 도구로서 책만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 예상은 보기 좋게, 그것도 불과 20년도 안돼 빗나갔다.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알고 싶은 지식, 논문과 책을 불과 몇 초 만에 인터넷에서 찾아 제트 스키를 타듯 그 위를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서 하이퍼링크로 관련 정보를 탐색하면서, 중간중간 이메일도 열어보고 트위터도 한다. 엄청난 속도, 편리함, 복합성은 책의 운명을 바꾸었고, 인간 뇌의 신경회로까지 변화시켰다. 인터넷 속으로 들어간 책은 웹사이트 같은 존재가 됐다. 그것을 사람들은 단순 정보해독기로 변한 뇌로 빠르고 산만하게 훑어간다. 이때 전자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 그래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인터넷문명에 반기를 든 미국의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청림출판)에서'생각하는 법'이라고 했다. 오래 집중하고 사색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 말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똑똑해진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실제로는 지식과 정보를 결합시키고, 기억하는 기능을 인터넷에 맡기는 바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느림과 침묵, 집중과 인내, 깊이와 이성적 사고를 가지지 못한다. 이 선형적 사고야말로 독서에서 오기 때문이다.
■ 독서뿐만이 아니다.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 트위터의 140자 단문은 무형식과 즉각성이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해 글쓰기 전반의 표현력과 수사법을 잃게 만들었다. 컴퓨터와 휴대폰 자판은 손으로 말하고, 손으로 기억하기까지 앗아갔다. 1995년 유네스코가'세계 책의 날'을 정한 것도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심지어 적이 된 인터넷을 탄생시킨 책과 독서의 깊고 예리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버리지 말자는 뜻이다. 니콜라스 카의 경고처럼 우리의 지능이 인공지능으로 변해 버리지 않으려면. 1616년 오늘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