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개 사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불이 난 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하기 위해 개울에서 몸을 적신 뒤 들불 위를 뒹굴었다는 오수개, 주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역으로 마중을 나가던 개가 주인이 죽은 뒤에도 10년 동안 마중을 나갔다는 일본 시부야의 충견(忠犬) 하치 이야기 등.
"개인이 아닌 국가와 국민에 충성한다"는 군견은 얼마나 충직하고 뛰어날까. 육ㆍ해ㆍ공군의 최전방 부대에 배속돼 맹활약하고 있는 군견들의 요람인 강원 춘천시 육군 제1군견교육대를 지난 19, 20일 이틀 동안 찾아 이들을 만나봤다. 군견교육대는 전국 각지서 활약하고 있는 600여 군견들의 고향. 현재 200여 마리의 군견이 전출이나 작전 투입에 대비해 훈련을 받고 있다.
사람 위에 군견
오전 6시 여느 부대처럼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된 이 부대의 아침은 "군견부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부대점호가 끝나자 확 달라졌다. "군견이 굶으면 군견병은 영창 간다" "이등병은 군견에게 매일 아침 경례를 한다" 등 밖에서 듣던 말들의 진위를 가늠케 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의례 점호가 끝나면 식당으로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당직사관의 '해산' 구호와 함께 병사들이 향한 곳은 견사였다. 김국현 상병은 "이곳에선 무엇이든 개가 사람보다 먼저"라며 "잠자리 드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개가 먼저"라고 귀띔했다. 막사에서 200m가량 떨어진 견사로 군견병들이 다가가자 개 짖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그제야 군견교육대임이 실감났다.
상전취급을 받아 군견이 부사관 계급이라는 게 바깥의 떠도는 말이지만 정확히는 계급이 없다. 군견병이 군견을 때리다 적발되면 하극상이나, 구타ㆍ가혹 행위가 아니라 '군용물손괴'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영과장 황승희 소령은 "사회에서 이 정도의 역량의 셰퍼드는 1,000만원을 호가하고, 이렇게 키우는 데 5,000만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간다"며 "계급 이야기는 그 만큼 애지중지 보살피라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말했다.
경쟁도 이런 경쟁이 없다
군견 야외 교육 현장. 군견병의 손을 떠난 지 2분 만에 자호(3)는 500m에 달하는 도주자의 행로를 그대로 밟아 목표물을 찾아냈다. 유일한 단서는 30분 전 도주자가 지나가며 남긴 모자와 숲길 위에 미세하게 남긴 체취. 도주자는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 경로를 3번이나 직각으로 꺾고, 바람이 잘 부는 양지를 골라 내달렸지만, 자호의 추적을 피할 순 없었다. 담당 교관은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완벽하게 추적해 낼 수 있어야만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군견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한다.
한해 수 백 마리의 예비 군견들이 태어나지만 80%는 심사에서 탈락될 정도로 군견의 선발과정은 엄격하다. 발육상태를 평가하는 등록심의와 집중력 등 기본품성을 보는 군견적격심사에서 70%가 탈락하고, 남은 개의 3분의 1은 다시 정찰, 추적, 탐지 등 주특기 교육을 진행하며 실시되는 최종평가에서 제외된다. 최종 20%에게만 군견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표성석 정찰탐지소대장은 "군견 1마리가 적을 수색하고 추적하는 능력은 1개 소대 병력의 그것과 맞먹는다"며 "계급을 부여한다면 소대장급 이상은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1990년 제4땅굴 소탕작전 때 북한군이 설치해놓은 지뢰를 확인하고 자신의 몸으로 지뢰를 터뜨려 1개 분대원의 생명을 구한 탐지견 헌트는 국내 최초로 소위 계급이 추서됐다.
군견병은 군견 쟁탈전
올해 여덟 살인 북극이는 지난해 5월 합참훈련 때 새벽 1시부터 13시간 동안 진행된 산악 추적 훈련을 고령의 나이에도 거뜬히 소화했다. 한창 나이인 네댓 살의 군견들이 6시간을 못 버티고 탈진한 점을 고려하면 강철체력이다.
6월 전역 예정인 주현태(24) 병장은 이등병 때부터 북극이와 호흡을 맞추면서 수도 없이 포상휴가를 갔다. 북극이가 작전 때마다 탁월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주병장님 PX에서 제일 맛난 걸로 한번 쏘겠습니다." 전역이 임박한 주 병장이 최근 6명의 후임병으로부터 로비를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견은 보통 8년 정도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 사이 주인이 4, 5번 가량 바뀐다.
진돗개 군견은
"수백 마리 군견 중에 진돗개는 왜 없지." 훈련을 지켜보면서 생겼던 의문 하나도 이 대목에서 풀렸다. 김일권 교관은 "주인에 대한 복종심과 충성심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군견으로 쓸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했다. 군견은 제대 등에 따라 주기적으로 군견병이 바뀔 수 밖에 없는데 진돗개의 경우 한 사람의 주인만을 섬기는 특성 때문에 새 주인이 다루기 어렵다는 것.
김 교관은 "10여년 전 진돗개를 추적견 훈련을 시킨 적이 있는 데 곤충이나 뱀 토끼 등 야외의 주변 동물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작전 수행에 실패했다"며 "야생동물 사냥 습성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춘천=조원일 기자 callme11@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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