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서 나들이 차량이 늘었다. 교통 정체로 발목 묶인 운전자들의 눈과 귀는 흔히 '손 안의 TV'라 불리는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장치에 쏠린다. DMB는 공간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보급대수가 1,000만대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이 첨단 정보기술은 교통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음주운전 이상으로 치명적인 교통사고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혈중 알코올농도 0.1%의 음주상태에서 운전자의 전방 주시율은 약 72%로 떨어진다.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만취상태다. 그런데 놀랍게도 운전 중에 DMB를 시청할 때 전방 주시율은 50%까지 떨어진다. 별 생각 없이 DMB를 보는 것이 만취 운전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경찰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 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54.4%가 전방 주시 태만 때문이었다. 운전의 기본인 전방 상황 파악만 제대로 했더라면 한 해 2,997명, 하루 평균 8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가끔 택시를 이용하다 보면, 대부분 DMB를 켜 놓고 있다. 운전에 위험하니 끄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당부에 대개 운전기사들은 "승객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이니 걱정 마시라"며 오히려 본인의 서비스 정신을 스스로 뿌듯해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어느새 DMB에 고정된 운전자의 시선을 발견하는 순간, 불안한 마음을 누르기 힘들다.
대다수의 운전자들이 운전 중 DMB 시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인식하면서도, 스스로 자제하려는 의지는 매우 미약했다. 운전자의 시청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해야 할 동승자 역시 그렇다. 심지어 일부 운전자들은 차량 정지 시에만 영상을 표시해주는 DMB의 안전기능을 정비업소에서 해제시켜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운전 중 DMB 시청을 위험행위로 단속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사실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은 이미 2001년부터 금지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그보다 위험한 DMB 시청 금지규정이 지금까지 마련되지 않은 것은 분명 교통 안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이다.
교통안전 선진국에서는 DMB 시청이나 내비게이션 조작 등 안전운전을 방해할 수 있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 등 화상장치에 표시된 화상을 주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6,000엔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일시 정지상태일지라도 운전자의 시각에서 화면 영상이 보이는 경우 최고 225달러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부터 국회에서 운전 중 DMB 시청 금지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을 수 차례 추진하였으나, 시급한 현안들에 밀려 입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행히 4월 임시국회에서 중점 처리법안에 포함되어 18일 소관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였다는 소식이다. 비록 늦었지만, 조속히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국민에게 안전한 도로를 되돌려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DMB를 '눈으로 마신 술'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운전자 스스로 '도로 위의 유혹'에 이끌려 자신과 동승자, 다른 운전자들을 치명적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는 운전 중 놓쳐서는 안 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면 반드시 안전한 장소에 주차하고 마음 편히 보는 습관을 갖도록 해보자.
문재우 손해보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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