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타 콜렉터서 국내 최초 기타코디네이터로… 김진헌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타 콜렉터서 국내 최초 기타코디네이터로… 김진헌씨

입력
2011.04.20 12:52
0 0

"100여대 기타 집안에 가둬두다가 그네들 소리 풀어줄 때다 결심했죠"작년부터 최이철씨와 작업… 척박한 기타계선 꿈같은 일아마추어에 무료강의 열고 콜텍 악기 해고자 돕기도

평범한 사람도 비밀 하나쯤은 갖고 산다. "비밀이 없다면 죽은 것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김진헌(47)씨는 평범한 사람이다. 덜도, 더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어렸을 때는 기타를 끼고 살았지만 재주도 용기도 없어 고등학교 때 음악을 포기했다. 다만 지금껏 사업을 하며 남들보다 조금 더 돈을 모았을 뿐이다.

그도 비밀이 있다. 그의 집에는 100여대의 기타가 숨겨져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가 50원 하던 중학생 시절 거금 1만2,000원을 주고 구입한 통기타부터 한정판으로 전세계에 36대밖에 없다는 펜더 기타까지 모두 그가 평생 모은 것들이다. "소리를 갖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능력이 없어 자신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던 그 기타음을 평생 찾아 다녔다.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국내 최초의 기타 코디네이터. 그는 지난 세월을 기타 콜렉터로 살았다. 모든 기타를 손에 쥐고 아무에게도 그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지난해 초에는 경기 수원의 한 무명 기타리스트에게서 1982년도형 펜더 기타를 사들였다. 콜렉터 사이에서 희소성이 높은 기타였다. 마흔 줄의 그 기타리스트는 아침부터 취해 있었다. "생계를 위해 판다"고 했다. 얼마 후 그의 아내가 찾아와 "남편이 기타를 판 뒤 몸이 아프다. 다시 돌려줄 수 없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기타가 모일수록 기타음들도 쌓여나갔다. 그게 그의 음악이었다.

"이게 과연 좋은 일인가." 그는 그때 그런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인연으로 자신에게 와서 이제껏 그네들이 품은 소리 신명 나게 한 번 풀어보지 못했던 기타들. 그는 소리를 가둬놓고 있었다. 소리를 풀기로 했다. 그 길로 기타 코디네이터로 나섰다.

에릭 클랩튼 등 세계 유명 기타리스트들은 기타 세팅을 위한 전문가들이 따로 있다. 기타 코디네이터는 기타리스트를 도와 기타음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곡을 골라 이를 최적의 기타로 완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척박한 국내 기타계에선 꿈같은 얘기였던 그 일에 김씨가 나섰다. 그는 지난해부터 국내 기타리스트의 전설로 불리는 최이철(59ㆍ그룹 사랑과 평화)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기타의 장인 제임스 타일러가 만든 옥색 아이스워터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종류인 그렉 패슬러의 마스터 샬로또, 존 잉글리쉬가 만든 1957년도형 기타, 존 크루즈가 만든 1962년도형 기타 등 그가 최이철에게 제공한 4대 기타 가격은 국산 중형차 가격을 훌쩍 넘는다. 그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을 위한 무료 강의도 열고, 가난한 기타리스트에게는 공짜로 기타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의 기타 인생에도 위기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사업이 기울어 기타를 팔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 "기타 하나 팔 때마다 손가락 하나 끊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몇 대 팔고는 버텼다. 그의 아내는 그런 그를 이해해줬다. "서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이더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아내도 전문가가 다 됐다. "지난해 서울 낙원상가 악기가게에 들렀을 때 한 사람이 사갔던 기타를 도로 들고 와 '왜 이렇게 헌 티가 나냐'고 따지는 걸 봤어요. 그때 아내가 '저거 1968년형 렐릭 처리(새 기타를 낡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된 거 아냐'고 말해 깜짝 놀랐어요."

김씨는 최근 콜텍악기의 해고 노동자들 돕기에도 나섰다. 콜텍은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한 국내 기타 제조업체. 노동자들은 사측의 위장폐업으로 일터를 잃고 수년 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미국 유명 뮤지션 하이럼 블록이 마약에 빠져 내놓은 펜더 기타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씨가 산 건 유명한 얘기죠. 블록이 정신 차리고 그 기타 되찾으려다 안되니까 구입한 것이 바로 콜텍 기타예요. 기타를 그리 소중히 하면서 콜텍 문제를 전혀 몰랐던 게 부끄럽습니다."

혼자만 즐기던 기타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자꾸 많아진단다. "기타 코디네이터로서 한국 기타계의 부흥을 위해 평생 노력할 겁니다. 제가 모은 기타들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기타 박물관도 열고 싶어요."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