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 목적은 결국 석유 이권 때문이었을까.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 정부와 메이저 석유 업체들 사이에 오간 비밀 문건이 공개됐다. 그 내용은 영국이 이라크 침공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근본 이유가 전후 막대한 유전개발권에 군침을 흘린 정부와 석유회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9일 "토니 블레어 정부는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이라크전 참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석유 이권을 노린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1,000쪽 분량의 정부 문건에는 이라크전 개시를 앞두고 정부 고위관리들과 로얄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영국 석유업체 중역들이 만나 나눈 대화들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정부와 석유 회사들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인물은 시먼스 전 통상장관. 시먼스는 2002년 10~11월 BP 측에 "정부는 이라크 정권 교체를 원하는 미국의 군사작전에 협력하는 대가로 영국 에너지기업들이 엄청난 양의 유전ㆍ가스 채굴권을 보상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시먼스는 미 정부에 대한 로비스트 역할도 자처했다. 시먼스는 2002년 10월31일 대화록에서 "현재로선 영국 기업들이 이라크에서 수익을 낼 수 있을 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미 행정부와 접촉한 뒤 크리스마스 전에 로비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영국 외교부 중동담당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채플린도 "셸과 BP는 장기적 안목에서 이라크 유전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부도 기업들을 위해 군사행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BP 역시 "미국이 전후 프랑스 에너지ㆍ화학기업인 토탈피나엘프(TFE)에 일감을 몰아줄 우려가 있어 기꺼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겠다"고 정부에 보고했다.
이런 내용들은 이라크전 당시 영국 정부와 석유업체들이 내보였던 입장들과 180도 다른 것이다. 블레어 전 총리는 일각에서 석유 음모론이 제기되자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고, 셸 측도 "정부와 석유에 관해 어떠한 협의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비밀 문건을 폭로한 정부감시 활동가 그레그 무티트는 "2002년 하반기에만 정부 및 석유업체 관계자들이 최소 다섯 차례 비밀회동을 가졌다"며 "이라크 석유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주 일일 석유 생산량을 역대 최고치인 270만배럴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BP는 현재 178억배럴이 매장돼 있는 이라크 최대 루말리아 유전의 지분 38%를 갖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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