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 이후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자로 내에 보관된 사용후 핵연료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에는 '죽음의 재'라고 불리는 플루토늄이 1% 가량 들어있는데도 원자로에 비해 안전기준이 느슨하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월성 고리 영광 울진 등 4개 원자력발전소에 총 33만 6,000 다발의 폐연료봉이 저장돼 있다. 여기에 연간 700톤의 폐연료봉이 새로 발생, 2016년부터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들어간다. 짧게는 만년, 길게는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반면, 100년 이상의 관리 경험을 가진 나라도 아직 없다.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기준 강화 등 종합점검이 시급하다.
재처리 시설을 가질 수 없는 한국은 원전 건물 내에 수조를 만들어 폐연료봉을 보관하고 있다. 수조 보관은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완벽할 수 없다. 고방사능, 고열, 고독성 등의 이유로 30만년 이상 관리가 필요한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을 갖추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특수강철 용기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드라이 캐스크(dry cask) 방식을 주장하지만, 고비용을 이유로 산업계의 반대가 수그러지지 않는다. 이런 비용까지 감안하면 현재 한 기당 약 2조원인 원자로 건설비용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자력이 값싼 에너지라는 주장도 수정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20년 뒤 한반도는 한중일 3국의 원자로 300여기로 둘러싸인'핵의 고리(Ring of Nuclear)' 안에 놓이게 된다. 특히 중국의 낮은 안전의식과 특유의 폐쇄성을 고려하면 우려가 커진다. 후쿠시마 참사에서 보듯, 대형 원전사고는 지역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위기로 이어진다.
재앙 수준의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때는 방사능 누출이 미미했다거나, 체르노빌 사고는 이완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발생했다는 변명도 군색하게 들린다.
원자력 산업이 이런 방식으로 계속 발전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원자력 르네상스의 종언은 예상보다 일찍 올 수 있다. 원자력 빙하시대의 시작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비밀에 가려진 원전의 본질적 위험을 알린 카나리아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원자력 안전과 안보의 경계 짓기가 이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해 워싱턴에서 처음 열린 핵 안보 정상회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창한 '핵 없는 세상'의 치어리더 격이다. 그것이 미국만의 쟁점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2012년 2차 서울회의는 1차 회의에서 제시된 의제를 이행ㆍ점검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의 원자력 안전과 핵 안보, 그리고 평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외교통상부 등 관계 부처는 미국이 제시하는 의제에 갇히지 말고, 서울회의를 유치한 이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다. 그저 지나가는 국제행사로 여기기보다 현안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와, 관리 소홀로 주변 토양오염 수준이 상당하다는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북한 핵 문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하기 위한 지혜와 전략을 짜야 한다. 88 서울올림픽에 태권도를 비공식 종목으로 포함시킨 것과 같은 이치다. 서울 핵 안보 정상회의에서 우리의 IT 기술을 접목해 원자력 안전기술과 기본 시각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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