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팔고 집도 팔았어요. 스트레스성 안면마비가 두 번 왔고 이혼까지 했어요. 지금도 하루에 100회씩은 빚 독촉 연락이 오죠. 하지만 전 공연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요. 살고 싶어서 다시 공연해요.”
닐 사이먼의 희극 ‘굿닥터’를 원작으로 뮤지컬 ‘루나틱’을 창작해 2004년 초연한 이후 8년간 줄기차게 소극장 공연을 이어 오며 작품을 키워 15일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754석)에서 1년 장기공연에 들어간 개그맨 출신 뮤지컬 제작ㆍ연출가 백재현(41ㆍ사진)씨의 말이다.
17일 무대에서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고 쾌활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선보이던 특유의 독설 유머도 여전하다. 하지만 1회 공연이 끝나고 2회 공연의 막을 올리기 전 대기실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2000년 ‘슈퍼선데이’란 프로그램에서 레슬링 체험을 했는데 어느 날 출연료를 수천만 원 줄 테니 레슬링 행사에 선수로 출전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계속 방송을 하다간 개그맨이나 연기는 제대로 못하고 레슬링 선수나 하겠다 싶어 방송 일을 그만뒀죠.”
그날로 잠수를 탄 그는 고교 때부터 청소를 해 주고 공연을 보곤 하던 대학로로 다시 돌아왔다. 1999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해 현재는 KBS 예능 프로그램의 간판이 된 ‘개그콘서트’도 원래 서울예전 연극과(연출 전공)를 졸업한 그가 96년부터 대학로에서 콘티를 짜고 연기를 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대학로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작곡가 권오섭, 작가 황선영씨와 팀을 짜 2001년 창작뮤지컬 ‘염라국의 크리스마스’, 2002년 뮤지컬 ‘세븐템테이션’을 연출했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진짜 시련은 뮤지컬 ‘루나틱’을 안착시키는 과정이다. 2004년 1월 초연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제 팬이던 아내와 2004년 결혼했죠. 그해 1~11월 공연장 매표소에서 밤 11시까지 함께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매일 일이 끝나도 사무실로 가는 저를 가정 생활에 불성실하다고 판단한 아내가 떠났어요.”
다행히 다음 해 손질한 공연이 입 소문을 타면서 관객이 모이기 시작했고 2007년 대학로 소극장공연은 보조석을 깔고 공연을 해야 할 정도로 대박이 났다. 2008년 여름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하고 대학로와 강남에 전용관을 만들 정도로 히트를 쳤다.
하지만 그는 돈이 벌릴 때마다 2009년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타타 인 붓다’ 등 창작뮤지컬에 다시 투자했다. 지금까지 창작한 뮤지컬이 11편에 이른다.
그러나 2008년 소속사 대표가 선급금을 받고 티켓유통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인터파크가 아닌 티켓링크에 작품을 올리면서 손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집과 차를 모두 팔았지만 빚은 쌓여갔다. 공연 자체에만 미쳐 있는 그를 세상은 또 한번 속였다.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할 생각까지 했어요. 작품하며 신세를 진 지인들을 피해 다닌지 오래에요. 2006년부터 반지하에서 살기 시작해 아직까지 15평 이상 되는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전화와 문자를 포함해 하루 100회 넘는 빚 독촉에 시달려 새벽에 눈을 뜨면 아침 해가 뜰 때가지 하염없이 울기 일쑤에요.”
하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작품이 좋으니 열심히 하면 된다’고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더 빚지는 한이 있어도 저질러야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용기를 냈어요.”
그동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2004년과 2006년 스트레스성 안면마비를 두 번 겪었고 청력은 노인 수준이어서 보청기를 착용한다. 다이어트를 했지만 요요현상이 나타났다. 올 초 건강검진에서 “이대로 가면 몇 달 안에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고 식욕 억제를 위해 위 일부를 묶는 수술을 받고 담배를 끊었다. 뮤지컬이 대체 뭐길래.
“조명 음향 무대와 상관없이 입만 떠드는 개그보다는 매커니즘으로 감동과 웃음을 주고 싶어요.”
그는 대학로의 열악한 창작 환경을 후배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지난해에는 그의 회사 ㈜쇼엘이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 직원들에게 겨우 최저임금의 90%를 줄 수 있었다. 그는 공연을 사랑하는 후배들이 뜨는 1%에 속하지 못하면 30세 전후로 대학로를 떠나야만 하는 현실이 자기 일같이 답답하다.
“대학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그대로 다른 분야에서 일한다면 벌 수 있는 소득의 10분의 1 정도만 받습니다. 고용부 지원금이 끊기는 3년 안에 작품을 더 키워 후배들이 최소한 기초생활비 걱정은 없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작품을 사랑하는 작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한 걸까요.”
정신병자란 뜻의 뮤지컬 ‘루나틱(Lunatic)’은 나제비 고독해 정상인 등 정신병동에 입원한 세 사람이 자신이 병원까지 오게 된 사연을 소개하며 벌이는 이야기다. ‘매일 감정을 참으며 사는 우리 모습이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주제의식을 개그와 재즈음악에 녹여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02)3674_1010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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