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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문단골 60년 이야기] <3> 4ㆍ19 총성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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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문단골 60년 이야기] <3> 4ㆍ19 총성의 기억

입력
2011.04.1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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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그 때 나는, 아직 스물아홉 살의 독신으로 서울 종로구 청운동 끝 인왕산 동켠 중턱의 한 민가에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을 돌아볼 때마다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갛게 기억이 되는데, 그 한 달 남짓 전인 3월 15일 선거 날은 투표를 했는지 어쨌는지, 투표를 했다면 어느 투표구에서 누구에게 붓 뚜껑을 눌렀는지, 그리고 종일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3ㆍ15 선거에 대해서는 애당초 아무런 관심조차 안 가졌던 것 같다. 뻔할 뻔 자 노름임을 나대로 미리부터 간파하고 아예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동네로, 나 몰라라 하고 체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한가지 선명하게 기억 나는 일은 당시의 선배 소설가 오상원의 천거로 공보처 조사과에서 나오던 한 정기간행물의 교정원으로, 이를테면 편집장 격인 그 오상원의 편집 보조원으로 호구를 해결하고 있었는데, 3ㆍ15 선거가 임박해지면서 주위가 갑자기 삼엄해지고 그 알량한 일자리도 조금씩 위협을 받아 하루하루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거 날짜가 임박해서 전성천이라는 목사 한 분이 공보실장(장관급)으로 새로 부임해 와서 공보실 전 공무원의 성향 조사를 벌인다나 어쩐다나, 그리하여 야당 성향인 것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모가지를 자를 것이라고 하여, 한 때 부서 안이 온통 공포분위기로 뒤숭숭했다. 나야 정식 공무원도 아니어서 그런 쪽으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 교정원 모가지나마 잘릴까 보아 덩달아서 덜컥 겁이 나서 그 새로 부임해온 목사 장관과 기맥이 통한다며 으시대던 조사과 과원 하나에게 나도 알게 모르게 아양 같은 것을 떨며 애교를 부리게 됐다. 대저 사람이라는 게 이런 경우에 이렇게 되기가 십상임을, 이미 소설 깨나 쓰는 신진작가 신분이었음에도 스스로도 조금은 무안 섞어 확인이 되던 일이었다. 3ㆍ15 선거를 두고는 이 일 한가지만이 또렷하게 기억이 날 뿐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남짓 뒤 4월 19일 이른 아침의 일 하나는 지금까지도 더러 묘한 느낌 섞어 떠오르곤 한다. 그 날 아침은 드물게 쨍 하게 맑은 날이었다. 나는 마악 해가 떠오를 무렵, 하숙집 바로 앞쪽 능선으로 혼자 산책을 나섰다. 그리하여 경무대(청와대의 이전 명칭)가 저 아래로 빤히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맨 풀밭에 10분 정도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청명한 날씨가 기똥차게 좋았다. 야하, 날씨 한번 좋오구나 하고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빤히 내려다 보이는 그 푸른 기와집(경무대) 쪽에서 별안간 쾅 쾅 쾅 하고 둔중하게 깊숙한 소리가 세 번 울려왔다. 그리곤 그 뿐이었다. 마치 깊은 땅 속의 지심(地心)에서 나는 것 같은 울림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 무슨 환청(幻聽) 같기도 했으나 분명히 환청은 아니었다. 그대로 나는 금방 그 일은 잊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따금씩 혼자서 가만가만히 생각나곤 했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그저 지극히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과연 무슨 소리였던지, 지금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다. 분명히 환청은 아니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슨 소리였던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일을, 나대로의 그 궁금증을, 단 한마디인들 발설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현금에 와서는 4ㆍ19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그 날 아침 경무대 쪽에서 나던 그 소리, 여전히 불가해하기만 한 그 쾅 쾅 쾅 하고 세 번 울렸던 그 소리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날 오후 한 시쯤 중앙청 후문 앞 적성동 파출소 주위에 구경꾼들 몇몇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그저 멍한 표정들이었다. 그 앞의 꺾일목 해무청 앞으로는 우람한 수도관을 디굴디굴 굴리면서 대학생 떼거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동국대학 학생들이라고 했다. 그 건너 낡은 건물(현재의 정부청사가 서 있는 곳쯤 될 것이다) 탄약고 안은 조용한 정적에 감싸여 있고 적선동 파출소 안도 조용조용 했다. 오직 대학생들의 고함소리만 진동하고 있었는데, 뭐라고 소리들을 지르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곧 중앙청 안 별관 쪽 사무실로 들어와 급한 일만 대강 챙기고는 사무실 복도 창문을 통해 경무대 쪽을 건너다 보았다. 그 쪽도 시종 조용조용한 적요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게 오후 너 댓시나 됐을까. 그때까지 탕 탕 탕 탕 쏘아대던 공포 소리는, 그 조금 싱거운 소리만으로도 공포 소리라는 게 알려졌었는데, 어느 일순 따르르르 하는 연발 소리가 첨예하게 뒤통수를 치며 온 몸에 전류가 닿아 오는 듯이 찌르르 했다. 동시에 같이 내다보던 조사과 직원 하나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실탄이다. 드디어 학생들 흩어지나보다.”

그건 나도 즉각 알 수 있었다. 그 실탄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대번에 살벌해지면서 와르르 사방으로 참새떼 흩어지듯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강한 충격으로 느껴져 왔다. 공포탄 사격이 실탄사격으로 옮겨가던 요 순간이야말로 바로 4ㆍ19였다. 아침에 청운동 꼭대기에서 세 번의 울림소리로 들렸던 그 둔탁했던 소리와 실탄사격이 시작된 요 순간만이 이렇게도 첨예한 기억으로 꼬나박혀져 있다니. 그 순간을 경계로 그 앞은 그냥 두루뭉실한 ‘농담’ 같은 것이었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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