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앤 차일드'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인물이 던지는 대사 "함께 한 시간이 중요해요." 짧지만 강렬하게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가족의 사랑은 핏줄도 중요하지만 같이 보낸 시간이 많아야 피의 농도도 더 진해진다는 의미일 듯하다. 나아가 기른 정이 낳은 정 못지않음을 시사하는 대사다.
함께 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화지만 역설적이게도 '마더 앤 차일드'는 평생 단 한번도 함께하지 못한 엄마와 딸의 사연이 중심을 이룬다. 소재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할 영화지만 우울한 기운만이 스크린을 장악하지 않는다. 애틋하면서도 따스하게 희망 어린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상의 모든 모성을 대표하는 영화란 느낌이다.
오십 줄에 이른 카렌(아네트 베닝)의 삶은 기구하다. 열넷에 딸을 낳자마자 입양을 보낸 뒤 병약한 노모를 모시고 산다. 삼십칠 년 동안 딸을 그리워해 왔지만 죄책감 때문에 딸의 행방에 대해 수소문조차 하지 못한다. 호감을 지닌 남자가 다가와도 매번 신경질적 반응이다. 카렌의 딸 엘리자베스(나오미 와츠)의 삶도 파편적이다. 유능한 변호사지만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배타적 인간관계를 보인다. 고교생 때 일찌감치 불임수술을 받고 독신으로 살아간다. 이웃 남자와 사랑 없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카렌이 딸을 입양시켰기에 새로운 사랑을 주저한다면 엘리자베스는 입양됐기에 사랑을 믿지 못한다. 카렌이 핑크 빛 사연을 맺게 되고, 엘리자베스가 생각지도 않은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은 방치해뒀던 혈육을 찾아 나선다.
등장인물들은 뭔가 부족한 가족들과의 사연으로 소개된다. 이들 대부분은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혼했고, 금슬이 좋은 부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이들 중 특히 여러 엄마와 딸의 이야기들이 주변부를 형성하면서 중심에 놓인 카렌과 엘리자베스의 서러운 관계를 수식한다. 영화는 그렇게 여러 등장인물을 동원, 점묘법으로 부모와 자식의 사랑, 더 좁게 말하면 엄마와 딸의 사랑을 묘파해 낸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충실히 포착하는 섬세한 연출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눈물을 끌어낸다.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이 여럿이다. 입양된 사실이 인생 전체를 뒤흔들고 있어도 정작 자신이 태어난 로스앤젤레스를 떠나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의 사연, 불임인 딸이 입양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고선 정작 입양이 이뤄진 뒤 모성을 발휘하는 어느 노모의 모습 등은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딸과 엄마를 둔 여성 관객이라면 손수건 필수 지참이다.
감독은 콜롬비아 출신의 로드리고 가르시아다.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2000) '나인 라이브즈'(2005)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21그램' '바벨') 감독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할리우드에서의 라틴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영화다. 2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백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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