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22일 뉴욕 센트럴파크에 60만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환경을 주제로 한 연설을 듣거나 자발적으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한 해 전에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가 계기였다.
1969년 1월28일 미국 정유회사인 유니언오일이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인근에서 원유 시추 작업을 하던 중 시설이 파열돼 쏟아져 나온 원유가 인근 바다를 오염시킨 것이다. 미 전역에서 2,000만명이 참가한 이날 행사가 매년 한 번씩이나마 모두가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지구의날'의 출발이었다.
뉴욕 집회를 계기로 고엽제 사용이 중단되고 미국 정부가 환경보호청과 연방환경법안을 제정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반대세력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보수세력들은 "환경운동은 반체제운동"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공세를 펼쳤다.
실례로 '미국애국여성회'라는 단체는 환경운동이 "체제전복의 마지막 단계"라는 주장을 퍼뜨렸으며, 집회를 열었던 날이 100년 전 레닌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는 점을 근거로 공산주의 음모론을 제기했던 단체도 있었다.
지구의날이 세계적 규모의 캠페인으로 자리잡은 것은 1990년에 이르러서이다. 우리나라도 그 해 세계 150여개국 시민단체와 함께 '이 땅을, 이 하늘을,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라는 슬로건과 함께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국토, 하나뿐인 생명'을 주제로 남산 백범광장에서 지구의날 첫 행사를 시작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환경운동이 시민운동의 큰 줄기로 성장했지만 대형 환경 참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구의날 4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던 작년 4월20일 미국 멕시코만에 있던 영국 정유회사 BP의 시추시설 폭발로 150여 일간 약 500만 배럴의 원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구의날이 시작된 계기였던 산타바바라 원유 유출이 10만 배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언론들이 '세계 최초의 석유화산 폭발'이라 일컫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2005년 태안반도에 약 8만 배럴의 원유 기름띠가 해안을 뒤덮는 사고를 경험했고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다. 일본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유해성의 정도와 관계 없이 이미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는 환경의 경고 앞에서 1970년 센트럴파크 집회에 섰던 존 린제이 당시 뉴욕 시장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살기를 원하는가 죽기를 원하는가."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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