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만명의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 국적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게 아니라 자동 이탈된 것입니다. 정부가 이를 바로잡아 다행입니다"
올해 새 국적법이 시행에 따라 19일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중 국적을 갖게 된 김대원(43) 해외입양인연대 이사는 "입양인들은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에게 상처를 줄까 외국 국적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복수국적은 꼭 필요했던 제도"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섯 살이던 1972년 형과 함께 스위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러나 양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머리 공부'보다 '손기술'을 익히라는 양부모의 반대로 처음엔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동양인에게 쏟아지는 차별도 견뎌야 했다.
김씨는 "길거리에서 검은 머리를 처음 본다며 만지는 사람도 있었고, 취업할 때도 다른 동창생들보다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털어놨다. 친구들이 5번 시도해서 일자리를 얻었다면 자신은 50번 넘게 이력서를 내야 했다. "스위스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스로 면접을 보러 가면 면접관들이 보자마자 '외국인이구나'라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런 차별 속에도 김씨는 스위스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군대를 다녀오고, 학비를 벌어 취리히 대학에도 입학했다. 덕분에 지금은 5개 국어에 능통한 인재가 됐다. 그런 그가 한국에 귀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03년 여름. 휴가 차 두 달간 머물면서 무작정 '한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앞서 1994년 방문 때는 친어머니와 상봉하기도 했다.
김씨는 휴가를 끝내고 스위스에 돌아가 짐 가방 하나만 달랑 싸 들고 귀국했다. 한국에 정착한 김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입양인들을 위해 해외입양인연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한국과 외국의 국적법을 연구하며 외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국적을 회복할 길이 뭔지 해법을 찾아 나섰다.
전세계 해외 입양인을 대상으로 복수국적 허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이고 법무부를 찾아가 이중국적을 허용해달라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4년 만에 결실을 본 김씨는 "그 동안 정서상으로는 두 나라 국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법적으로 완성됐다"며 "앞으로 한국과 스위스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만간 그렇게 갖고 싶었던 한국 여권을 신청할 예정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