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0년째를 맞은 프로야구는 올 시즌 안팎으로 축제 분위기다. 9구단 창단이 머지 않았고 연일 차고 넘치는 관중은 650만을 넘어 700만 ‘초대박’을 향해 순항 중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경기와 성숙한 관중 의식에 발맞추지 못하는 부실한 인프라는 3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삼성-두산전이 열린 17일 대구구장. 경기 시작은 오후 5시인데 삼성 선수단은 오전부터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었다. 두산 선수단도 오후 12시30분에 숙소를 나왔다. 전날 경기가 정전으로 인해 서스펜디드(일시 정지) 게임이 선언됐기 때문.
16일 두산이 3-2로 앞선 8회초 1사 후. 2번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대고 1루로 향할 때였다. 전광판과 조명을 비롯한 구장의 모든 불빛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 유ㆍ무선 인터넷도 마찬가지. 오후 7시28분의 일이었다.
14분 뒤 불빛이 돌아왔지만 6개 조명탑 중 좌익수 왼쪽의 5번 조명탑은 여전히 불을 밝히지 못했다. 원인은 변압기 고장. 결국 심판진과 김호인 경기감독관은 양 팀 벤치의 의견을 종합해 오후 8시16분 서스펜디드 게임을 선언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기자실을 찾아 “면목없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조명 고장으로 인한 서스펜디드 게임은 1999년 10월6일 전주 쌍방울-LG의 더블헤더 2차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17일 오후 3시부터 사실상의 더블 헤더를 치르게 된 양 팀 선수단은 허탈하다는 듯 그저 웃었다. 대낮부터 시험 가동된 조명 아래서 선수들은 훈련을 했다. 당장 수리가 어려운 문제의 5번 조명탑은 비상 발전으로 불을 밝혔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이…. 야구장 빨리 잘 짓겠지”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송삼봉 삼성 단장은 “대구시에서도 잘해주려고 올해 초 1개 8,000만원 하는 변압기를 마련해 줬다. 통상 변압기는 잘 안 나가는데…. 죄송하게 됐다”고 했다.
1948년 완공돼 노후할 대로 노후한 대구구장은 구장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중심에 있었던 구장. 이에 삼성과 대구시는 최근 새 구장(2014년 완공 예정) 건설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 현재의 대구구장은 ‘종말’이 가까운 상황이다. 삼성은 16일 입장한 관중에게 입장료를 환불해 주거나 추후 1경기 무료 입장을 허용해 성난 팬들을 달랬다.
1점차로 앞서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두산은 아무래도 삼성보다 피해가 컸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해외 토픽 감이다. 프로야구 30년에 10대 뉴스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며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안하고 있는 게 정확한 심정”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7회까지 95개의 공으로 9탈삼진(개인 최다 타이) 2실점 호투하던 두산 선발 김선우와 세이프 타이밍이었던 정수빈이 최대 피해자. “안타 치면 되죠. 그런데 쉽진 않겠죠”라고 입맛을 다신 정수빈은 17일 재개된 경기에서 결국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정전 사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메이저리거 출신인 두산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이런 일은 처음이다. 많이 놀랐고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한편 이틀간 이어진 경기는 3-2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16일 7이닝 2실점으로 잘 던진 김선우는 시즌 첫 승리를 안았고 17일 등판한 마무리 임태훈은 3분의2이닝 무실점으로 4세이브(1승)째를 올렸다.
대구=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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