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개운치가 않다. 떫은 감을 씹었을 때의 역거움이랄까. 지난주 말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보면서 느낀 퀴퀴한 구린내가 이내 가시질 않는다. 어이없는 수사 결과도 그렇지만, 2년간 떠돈 의혹들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국세청과 검찰, 두 권력기관의 내부 관행과 행태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선 국세청. 무혐의가 난 정권 실세들과의 의혹은 접어두고, 검찰이 면피용(?)으로 기소한 한 전 청장의 혐의만 봐도 국세청이 얼마나 특혜받은 '기형적인' 국가기관인가를 알 수 있다.
한 전 청장은 2007년 1월 차장 시절 부하 직원을 시켜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500만원(검찰은 1,200만원 추정)에 구입, 전군표 당시 국세청자에게 인사 청탁용으로 선물했다. 무혐의 처분이 났지만 한 전 청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정권 실세에 10억원을 준다며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에게 3억원을 요구했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전 청장은 퇴임 후 2년간의 미국 도피생활 동안 7개 기업으로부터 7억 2,000만원의 자문료를 챙겼는데, 기업에 자문계약을 뒤에서 종용한 사람은 현직 관료였다.
이처험 한 전 청장은 로비자금 같은 부정한 돈이 필요하거나 은밀한 일을 처리할 때면 국세청 현직 간부를 동원했다. 부하 직원에게 범죄가 될 수도 있는 일을 시킬 수 있는 곳은 뒷일을 책임져 주는 조폭이나 사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불의를 저지르면서까지 상관을 챙기는 국가기관은 분명 문제가 있다. 국세청은 마피아가 아니다.
'꼬리 자르기' 수사를 한 검찰도 그렇다. 한 전 청장의 그림로비와 골프로비 의혹이 불거진 2009년 1월 시민단체, 정치권, 언론의 잇단 수사 촉구에도 검찰은 "수사 의로가 오면 한다"며 시간을 끌어 한 전 청장의 미국 도피를 방조했다. 그리고 2년 만의 수아세어 이 대통령 및 여권 실세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한 전 청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무혐의 또는 사실 아님 처분을 내렸다. 각종 의혹 제기에 검찰은 "근거가 없다"(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굉장히 무모하고 불필요한 행위다"(주류 수입면허 재발급 대가 금품수수 의혹), "확인할 수 없다"(여권 실세 골프접대) 등 외면하기로 일관했다.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의혹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없었다.
국세청과 검찰, 두 권력기관이 이처럼 철저한 상명하복과 조직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두 기관이 갖고 있는 배타적 권한 때문이다. '세무조사와 기소'라는 기관의 권한을 행사하고 누리기 위해선 조직논리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국세청과 검찰은 이번 배타적 권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할 수 있는 특권까지 있다.
다시 말해 탈세나 범법 행위가 의심돼도 '100% 물증'이 없다면 세무 공무원이나 검사는 자의적으로 세무조사나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가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확증이 없다'로 판단하면 무혐의가 되지만,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태광실업 로비 의혹처럼 '먼지떨이'에 나서면 비리 게이트로 확산된다.
탈세나 범법자를 다루는 두 기관에 어느 정도의 배타적 판단 권한이 주어지는 것으로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이 권력자와 있는 자들만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건 분명 독이다.
송영웅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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