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형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알래스카에서 날아왔습니다. 43년 만에 온 겁니다. 제발 저희 형을 꼭 좀 찾아주십시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개봉3동 주택가를 순찰 중이던 개봉지구대원 김봉수(52ㆍ사진) 경위에게 백발의 노인이 다짜고짜 사연을 털어놓았다. 월남전 때 노무자로 베트남으로 떠난 이후 고국 땅을 이제야 밟게 됐다는 얘기에 반신반의했지만, 노인의 표정이 너무 간절했다. 동네를 헤매고 다닌 듯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김 경위는 노인을 일단 지구대로 모시고 갔다.
노인의 이름은 차덕현(70). 형 덕선(72)씨의 생년월일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일찌감치 군대를 다녀 온 그는 27살 되던 해 돈을 벌기 위해 월남 파병부대를 따라 나섰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택시기사, 세탁소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기반을 만들어 고향을 찾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54살에 이혼의 아픔을 겪고 생활에 지치면서 고향으로 향한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차씨는 이후 미국 알래스카로 이주했고 지금은 주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아파트에서 월 2,000달러가 조금 넘는 연금을 받고 지내고 있다.
차씨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면서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졌다. 1년간 연금을 아끼고 아껴 비행기 삯을 만들어 이제야 오게 됐다. 형이 개봉동에 살았다는 말만 듣고 지난 7일 무작정 이곳으로 와서 개봉동을 돌아다녔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경위는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형의 최종 주소지가 양천구 신정동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침 이 곳에는 형 덕선씨의 딸 부부가 살고 있었고, 덕선씨의 딸은 전남 목포에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형은 개봉지구대로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형제는 43년 만에 서로의 음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 두 사람은 목포에서 극적인 상봉을 했다. 두 사람은 부모님 무덤이 있는 경기 파주에 들러 40여 년 만에 함께 큰절을 올렸고, 1년에 한 번씩 꼭 같이 찾아 뵙겠다는 약속도 했다.
지난 14일 개봉지구대를 다시 찾아온 차씨는 김 경위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김 경위는 "형님과 통화가 됐을 때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며 "경찰관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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