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스트 학생들은 서로가 적…학점머신 만드는 곳이 대학인가"
한국 과학영재들의 요람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는 불과 넉 달 사이에 4명의 학생들이 자살하는 충격과 슬픔 속에 있다. 강의실에서, 식당에서, 기숙사에서 이들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며 서남표 총장의 개혁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총학생회도 비상체제다. 자체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느라 일주일이 넘게 밤샘 회의를 했다. 개교 40년 만에 맞은 최대 위기를 스스로 돌파해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비쳐졌다.
지난 11, 12일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총학생회실을 찾았다. 카이스트 사태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생생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총학생회의 곽영출 회장과 최인호 부회장을 함께 만났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두 학생대표들은 "서 총장이 카이스트의 DNA를 멋대로 바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_두 사람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아직까진 없다"(곽 회장)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학년 때 잠시 생각한 적 있다. 공부가 힘에 부쳤고,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최 부회장)
_4명의 동료 학생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는가.
"자살은 실로 어려운 문제다.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할 사안이다. 하지만 자살을 유도하는 건 주변이다. 학생들이 더 이상 잡을 것이 없을 때 택한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자살을 개인문제로 국한시켜선 안 된다."
_학업 스트레스가 결정적인가.
"학업 스트레스가 문제이긴 하다. 선후배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그렇게 여기더라. 그런데 학생들이 자살을 결심하기 전에 과연 그의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하는 부분을 봐야 한다. 교수나 친구나, 아니면 가족이 이런 고민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죽음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무관심이 자살을 낳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_카이스트는 경쟁의 지옥인가.
"사실 선후배들은 그런 얘길 많이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정도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고교시절 죄다 최상위권이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 힘들고 어려워도 참아 낸다. 근데 즐겁게 공부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 의욕이 떨어진다."
_왜 그런가.
"카이스트는 어딜 가도 경쟁뿐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와 직원도 모두 경쟁이다. 서로가 경쟁 상대다. 선의의 경쟁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게 안 된다. 이기기 위한 경쟁이 되다 보니 삭막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착한 경쟁이 이뤄지길 바란다. 목표치를 미리 정해놓고 탈락자를 낙인찍는 식의 무한경쟁에 질린다."
_그래도 경쟁은 필요하지 않나.
"카이스트가 세계의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안에서 싸우면 안 된다고 본다. 내부에서만 경쟁이 이뤄지다 보니 진정한 발전을 위한 모습을 갖추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 구성원간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서로가 적이다. 이게 대학인가."
_적자생존의 동물의 왕국 같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모습 있는 게 사실이다. 서남표 총장이 취임(2006년)하기 전에 입학한 선배들은 자유를 카이스트 학풍으로 치더라. 선후배들이 자주 만났다고 하더라. 맥주잔을 맞대면서 인생을 논하는 여유도 있었다고 들었다. 대학이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이게 서 총장이 취임한 뒤부터 싹 자취를 감췄다. 선후배 모두 어떻게 하면 학점을 잘 받나, 뭐 이런 게 주된 대화다. 현실이 이렇다. 사제간, 선후배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학점만 잘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카이스트생들은 사회로부터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걸 잃고 있다. 서 총장이 자율과 소통으로 대표되는 카이스트 DNA(유전자)를 바꿔 버렸다."
_학교측은 학생 10명 중 9명은 경쟁을 잘 이겨낸다고 한다.
"정말 화가 치민다. 90%가 경쟁을 이겨낸다는 의미를 모르겠다. 무슨 잣대로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학생들이 있다면 '즐겁게 공부하고 있나'고 묻고 싶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많은 게 좋은 대학인가. 그렇지 않다. 학점이 잘 나오는 학생도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직 학점만 염두에 둔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현실이 서글프다. 카이스트는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잊고 있다."
_경쟁이 싫다는 건가.
"카이스트생이라면 누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 진학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의 마인드보다는 학점을 꾸역꾸역 쌓아가는 학점머신(기계)을 만드는 곳으로 변질됐다."
_학생들이 기계라는 표현이 섬뜩하다.
"비단 카이스트생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대학생들의 고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가 아耐?싶다. 학점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학생들이 매몰될 수밖에 없다. 학점머신이 되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_공부 외 다른 것은 전혀 못하는 환경인가.
"환경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동아리가 78개나 있다. 밴드동아리, 춤동아리 식으로 매우 다양하다. 학생수 대비 동아리 수를 따지면 서울대의 2배다. 공부 때문에 밤12시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렇지만 시간을 뺏기기 때문에 동아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동아리 지원자 수가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결국 공부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기본적인 취미활동에조차 눈을 돌리기 어렵다."
_서 총장은 카이스트의 학업 강도가 세계 상위권 대학에 비해 세지 않다고 하던데.
"미국의 유명 공대와 비교하면 카이스트의 학업 강도가 센 것은 아니다. 공감한다. 중요한 것은 학업강도가 아니다.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을 학생들은 원한다. 학생회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학업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압박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심하다."
_세계 10위권 대학에 진입하려면 웬만한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학업강도가 센 것을 문제삼는 게 아니다. 그건 감내할 수 있다. 우리가 시정을 바라는 것은 학생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성과 특기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학교가 학점을 통한 규제를 해선 안 된다. 재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호견제를 통해 10%의 학생들을 잘라내는, 낙오자로 만드는 교육시스템은 버려야 한다. 이런 학생들이 발전 가능성이 없는 학생들로 규정한다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_차등수업료제와 '장짤'(장학금 잘림)에 대한 압박감이 그렇게 심한가.
"장짤에 걸리는 학생 비율은 대략 40% 정도로 알고 있다. 압박감 크다. 그러나 이건 학생 개인의 문제여서 받아들여야 한다. 차등수업료제는 정말 문제다. 이게 서 총장의 개혁마인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제도다. 돈으로 경쟁을 시키겠다는 교육철학 자체가 잘못됐다. 이 제도 시행 전에 학생들과 제대로 된 논의 한차례 없었다. 무작정 시행했다. 이러니 극단적인 결과가 나온 것 아닌가."(카이스트측은 제도개선안의 하나로 다음 학기부터 차등 수업료제 폐지를 결정했다)
_차등 수업료제에서 학점 3.0은 어떤 의미인가.
"3.0 이하의 학점을 받는 학생은 30% 조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보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끼는 학생도 꽤 된다. 결국엔 상대평가 구조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3.0 이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30%가 곧 실력이 없고 무능하다고 봐선 곤란하다. 학점이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모두 말해주진 않는다. 학점 때문에 다른 창의성 있는 활동을 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다. 학점 때문에 일종의 '학업 벌'을 받아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_3.0 이하 학점 받아본 적 있나.
"말하기 곤란하다. 프라이버시다."
_일종의 장학금인 기성회비 면제기준인 2.95도 높은 건가.
"기성회비 면제 학점 기준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 기성회비는 수업료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점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더 낮춰졌으면 좋겠지만, 강의 들으면서 기성회비를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
_서 총장의 개혁정책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며칠 전 과 대표들이 참여하는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입장을 정리했다. 총장이 추진하는 경쟁위주의 제도 개혁은 실패했다. 그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고 판단한다."(총학생회 집행부의 이런 의견과 달리 13일 열린 전체 학부생 비상총회에서 '서 총장과 학교측에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을 실패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안건은 부결됐다.)
_너무 단정적이진 않나.
"서 총장이 자신이 졸업하고 학과장으로 있었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툭하면 말하는데, 학교는 나름의 문화가 있다. 학교가 자라는 환경이 있는 것이다. 서 총장은 기업식 경쟁 마인드로 똘똘 뭉쳐있는 MIT를 카이스트의 역할 모델로 삼았겠지만, 이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진 말았어야 했다. 카이스트 여건에 맞는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어야 했다."
_왜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가.
"점점 비중이 늘고 있는 비과학고 출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안 돼있다. 과학고 출신들도 학업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큰데, 고등학교 때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일반고 출신들은 어떻겠는가. 교수한테 과제물 낼 때 즐겁게 내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_서 총장의 운영 스타일은 어떤가.
"퇴행적이고 강압적이다. 총장 부임한 이듬해인 2007년 이후에 카이스트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도 학생들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공감대 형성이 이뤄진 적이 없다. 모두 일방통행식이었다. 구성원 전체와 대화하고 소통했어야 하는데, 이게 없었다. 작년 재임에 성공한 뒤 소통을 내걸었지만 말뿐이었다. 다양한 의견을 전했지만 변화가 전혀 없었다. 3명의 학우들이 자살한 뒤 열렸던 총장과의 첫 간담회 때 학생들이 500명이나 모인 것만 봐도 소통이 얼마나 없었는지 알 수 있지 않나."
_만나기는 했을 것 아닌가.
"학부 총학생회와 만난 것은 공식적으로는 2008년에 한번, 이번에 한번으로 딱 두 번이다. 소통은 정책으로 반영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지만, 서 총장한텐 다른 나라 얘기였다."
_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 특성상 서 총장이 학업 매진을 독려했다는 판단은 안 드나.
"왜 안 그렇겠는가. 교육을 받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세금으로 공부 환경을 만들어주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은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엔 카이스트에 꿈이 사라졌다. 학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유롭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실종됐다. 학점을 잘 받는 과목만 골라 듣는 현상이 만연했다. 이런 것이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_경쟁 탈락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외국의 유명 대학은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공부할 사람을 원한다. 카이스트는 수업료는 일단 공짜로 해놓고 성적이 안 좋으면 낙오자로 만든다. 결과만 놓고 생각해봐라. 미국 대학이 과연 교육적 측면에서 성공했나. MIT 같은 대학은 오직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만 찍어낸다. 카이스트를 그렇게 만들겠다는 게 서 총장 생각이다. 미국 대학만 보지 말고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대학을 연구해 한국에 맞는 카이스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_열등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다.
"1등만 있는 곳에 오는 학생들은 열등을 각오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학점을 받아보면 피부로 느껴진다. 다수가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_비과학고 출신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인가.
"1학년들은 그럴 것이다. 과학고에선 대학 교재로 배운다.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한다. 과학고 출신은 그래서 카이스트 1년은 편하다. 하지만 1년 지나면 과학고나 비과학고 출신이나 큰 차이 없다. 2학년부터 전공 수업에 들어가면 차이가 무의미해진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들어온 비과학고 출신 신입생들이다. 영어 프로그램 등 일부 보완책이 있긴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_과학고 중심주의가 있나.
"예전엔 카이스트에 과학고 문화라는 게 있었다. 100명을 합격시키는 과학고도 있었다. 2010년 입학사정관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과학고 문화라는 게 점점 줄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카이스트의 주류는 과학고다. 과학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일반고 출신은 적응이 힘들다."
_비과학고 출신 더 늘려야 하나.
"30%에 육박하는 일반고 출신 비율이 높다는 생각은 안 든다. 고교 때보다 노력이 필요한 건 맞지만 일반고 출신들이 더 늘어나도 상관없다. 카이스트는 열린 대학이 돼야 옳다."
_커리큘럼을 출신 고교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똑같은 카이스트생인데 따로 수업을 받는 것은 차별적이다. 1학년 때 비과학고 출신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_100% 영어강의를 학생들은 얼마나 이해하나.
"일단 교수들이 원어민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학생 부담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거다. 영어강의는 국제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과목을 100% 영어로 강의하면 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목 특성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영어강의를 완벽하게 하는 교수나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은 드물다. 어떻게 보면 영어강의는 교수들의 학습권 침해다."
_카이스트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논란이다.
"반성해야 한다. 주로 생명과학과 출신들이 의전원에 진학한다. 바람직하지 않다. 근데 학교 측이 생명과학과 출신에게 진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줬는지도 묻고 싶다. 진로 교육이 엉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본다."
_학생들은 카이스트를 몇 점 대학쯤으로 여기나.
"총학생회가 2009년부터 매년 재학생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졸업 후 학교에 재정을 기부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절반을 겨우 넘는다. 고민해보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다. 애교심이 약하다는 얘기다. 학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이 생기려면 즐거운 공간이 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이런 부분을 학교가 신경써야 한다."
_그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학이 되는 건 구성원 누구나 바라는 바다. 그러기 위해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 학점이 좀 안 나오더捉?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그런 학교를 원한다. 사람 냄새가 나는 대학이 그립다."
_학교 측이 내놓은 제도개선안을 수용할 생각인가.
"학교 측의 진의를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의 요구는 변함이 없다. 징벌적 차등 수업료제를 전면 폐지해야 하고 100% 영어강의는 당장 조정하는 게 옳다. 차기 총장을 선출할 때 학생들의 투표권도 보장돼야 한다. 대학 구성원의 핵심인 학생들의 의견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인터뷰=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 서남표 개혁의 '빛과 그늘'/ 교수들 철밥통 깨고, 학생들엔 성적 스트레스…
2006년 7월 카이스트 수장이 된 서 총장의 개혁은 타성에 젖어 있던 대학을 흔들어 깨운 것은 분명하다. 경쟁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정년심사를 강화,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뜨렸다. 정년 심사에서 탈락하는 교수들이 실제로 생겼다. 학생들에겐 차등수업료를 들이댔다. 학점 3.0 이하를 받으면 가차없이 한 학기에 최고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물렸고, 100% 영어강의 역시 학생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도구로 활용됐다.
문제는 이런 개혁이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다가갔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명꼴 자살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 총장은 지난해 연임 당시에도 논란에 휩싸였다. 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경영스타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교육계에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그때 교육과학기술부는 "결격 사유가 많아 연임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카이스트 이사회는 그를 총장에 다시 앉혔다. 그는 "개혁 속도를 조절하고 소통하겠다"고 공언하며 우여곡절 끝에 연임에 성공했으나, 올 들어 학부생 연쇄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교육계 내에서는 밀어붙이기 개혁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대 교수 출신인 김인세 부산대 총장은 "과학 영재들을 학점의 노예로 만드는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며 "실력이 뛰어난 이공계 학생의 경우 학부 땐 전공 못지 않게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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