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뱅크도 K리그 스폰서
정부의 압박 속에 기름 값 인하 시기와 방법을 놓고 상호 눈치보기와 날선 신경전을 펼쳤던 정유업계 라이벌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한판 붙는다. 싸움터는 다름 아닌 축구장. 이미 프로팀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FC제주)과 GS칼텍스(FC서울)에 이어 지난해 현대중공업(울산현대)과 한 식구가 된 현대오일뱅크가 2011 프로축구 K리그 메인 스폰서로 나서면서 그라운드 대결이 펼쳐지게 된 것.
현대오일뱅크는 울산현대가 16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과 펼치는 원정 경기에 직원 2,000명을 응원단으로 보내기로 했다. 오일뱅크 관계자는 "지난해 우승팀인 FC서울과 첫 경기에서 기선을 제압하자는 뜻에서 대규모 응원을 계획했다"며 "현대중공업, 현대종합상사 등 현대중공업 계열사 직원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다음달 15일 울산현대의 홈 경기로 열리는 FC제주와 경기를 울산이 아닌 충남 서산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을 통해 FC제주 측에 서산 개최 여부를 물었고, SK이노베이션 측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뱅크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한솥밥을 먹게 된 서산공장 직원과 가족에게 울산현대 경기를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최종 확정되면 서산에서 열리는 첫 번째 프로축구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취임한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울산현대 축구단, 미포조선 축구단, 삼호중공업 씨름단이 속한 현대중공업스포츠 대표도 겸임하고 있어 축구 경영에 적극적이다.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과의 홈 경기를 오일뱅크의 본산인 서산에서 치르는 것도 직원들의 기를 살려보겠다는 권 사장의 뜻이 담겨 있다.
축구 사랑하면 허창수 GS회장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도 누구 못지 않다. 24년째 FC서울 구단주를 맡고 있는 허 회장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기 전까지는 대외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축구단 행사 만큼은 예외였다. 허 회장은 지난해 FC서울의 국내 경기는 물론 해외 경기도 자주 응원을 가고 있다. 또 올 2월 일본 전지 훈련장을 비롯해 해 마다 FC서울의 해외 전지 훈련 장소를 찾아 격려하고 있다.
FC제주의 구단주 구자영 사장은 평소 "축구와 기업경영은 같다"고 강조한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던 그는 올 초 기자간담회에서 "축구에서 그라운드 전체를 보는 시야가 중요한 것처럼 기업도 전체 상황을 파악해 경쟁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움직일 지 미리 알고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최근 정유업계는 뒤숭숭하다.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이 기습적으로 신용카드 할인을 통해 휘발유, 경유 가격을 내린 데 대해 다른 정유사들은 "나머지 회사들의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담합 관련 조사에서 한 정유사가 '배신'을 하고 자진 신고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다. 이 때문에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정유사들의 전쟁은 어느 때 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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