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값 흥정소리에 지역경제 기지개가격 미형성으로 관망세… 본격 거래 한 달 이상 걸릴듯
14일 오전 7시 경북 예천 용궁가축시장. "어이, 여기 주인 있으면 빨리 와 보소." 8개월 남짓한 숫송아지 앞에서 60대 초반의 남자가 목청을 높였다. 주인과 중개인이 득달같이 달려오자 흥정이 시작됐다. "이십(220만원)에 주소." "뭔 소리여, 사십은 받아야 해." 실랑이가 오간다. 그러자 60대는 "그럼 이십오에 됐다"며 만원권 지폐 225장을 주인 주머니에 쑤셔 넣기 시작했고, 주인은 "절대 안된다"며 뒷걸음질쳤다. 숫송아지는 230만원에 팔렸다.
구제역 발생으로 4개월여 동안 폐쇄됐던 가축시장이 문을 열면서 농촌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안동에서 구제역 발생이 확인된 지난해 11월29일 개장 후 4개월 반 만에 다시 문을 연 이곳 용궁가축시장에도 모처럼 지역 경제가 기지개를 켰다.
이날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오전 5시30분. 용궁가축시장 입구에는 소를 실은 트럭 100여대가 장이 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분쯤 지나 첫 트럭이 시장 안으로 들어와 소 5마리를 끌어 내린다. 주인이 고삐를 잡아 당기자 뒷발을 버둥거리며 버티던 소가 결국 "음메" 소리를 내지르며 투다닥 내려선다. 시장 안에는 새벽 찬 기운을 녹이려는 축산농민과 소상인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미리 가격대를 점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300여명이 북적이던 이날 가축시장에서 5개월된 암송아지 4마리를 170만원씩 주고 산 김형철(52ㆍ예천읍)씨는 "구제역 이후 처음 열리는 장이어서 가격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아 불안하지만 우사를 마냥 비워둘 수 없어 몇 마리 샀다"고 말했다. 그런 탓인지 흥정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정작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오전 8시가 지나면서 이곳도 파장 분위기였다. 절반 이상의 소가 팔리거나 축사로 되돌아갔다. 이날 거래된 소는 130여마리로 8∼9개월된 숫송아지는 230만원, 암송아지는 225만원 선이었다. 구제역 발생 전에 비해 숫송아지는 20만원 가량 내렸고, 암송아지는 비슷하거나 조금 내린 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육우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입식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축협 관계자는 "구제역 전에 하루 200여마리가 거래된 것에 비하면 아직 관망세"라며 "한달은 더 기다려야 가격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을 연 용궁가축시장은 전국에서도 송아지 거래량이 많기로 소문난 전통 우시장이다. 경매시설을 갖춘 현대식 우시장의 경우 송아지는 8개월 미만, 비육우도 무게와 품질을 구분한 뒤 거래하지만 이곳은 좀 다르다. 경매 시기를 놓쳤거나 돈이 급한 농민,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전문 소 상인들이 이곳의 단골이다. 이날도 인근 영주와 문경은 물론 강원 충청 경기 등 전국 각지의 축산농민과 소장수들이 몰려들었다. 연간 3만마리 정도가 예천과 용궁우시장에서 거래된다.
예천축협 이정식 상무는 "예천에는 옛날부터 소규모 축산농가들이 많아 번식우 기반이 잘 돼 있어 송아지 거래가 대부분"이라며 "가축시장이 문을 열면서 지역경제도 다시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북지역에는 구제역에 따른 가축이동제한이 해제되면서 이달 8일부터 16개 가축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14일 현재 경북지역에는 안동과 영주 등 14개 시군에서 구제역으로 소 5만2,393마리와 돼지 37만2,213마리 등 42만8,564마리의 가축이 매몰됐다.
글·사진 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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