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 전산망 붕괴를 겪은 농협이 어제 온라인 업무 대부분을 회복했다. 그러나 폭주하는 거래 요구 등에 따른 부분적 업무 장애가 여전해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국내 제2의 금융기관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기술 차원의 문제로만 여기기 어렵다. 짧지 않은 시간의 전산망 장애와 창구업무 마비로 3,000만 고객이 금융거래에 차질을 겪은 것은 일시적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금을 제때에 인출하거나 옮기지 못한 데 다른 연체료 부담 등의 직접 손해에 덧붙여 채무불이행에 따른 계약해제 등의 확대 손해가 적지 않다. 더욱이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 금융권의 기획금융(PF) 부실화에서 비롯된 금융 불안이 제1 금융권으로 번졌다.
금융기관, 특히 고객 예탁금 운용을 영업의 근간으로 삼는 전통적 상업은행의 존재 근거는 편의성과 신뢰다. 이미 저축은행 부실과 일부 도산으로 금융기관도 생각처럼 안전하지 않다는 신뢰의 위기가 퍼진 마당이다. 또 최근 현대캐피털 고객 정보의 대량 유출로 금융정보의 허술한 관리 실태가 드러났다. 여기에 농협의 전산망 붕괴는 편의성과 신뢰성을 허물었다. 일련의 사건이 외환 위기 이후 겨우 쌓아 올린 국내 금융의 신뢰를 다시 흔들 것이 우려된다.
이번 사태는 디지털 사회의 기술 안정 측면에서 많은 것을 일깨운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관리업체 직원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나온 잘못된 명령이 전체 전산망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다. 만에 하나 외부의 해킹이나 고의적 행위 때문이라면, 앞서 현대캐피털 사건과 같은 고객정보의 대량 누출은 물론이고 일부 금융자산의 불법 이동 등 일파만파로 번질 뻔했다.
금융업계의 전산망 의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최소한의 아날로그 백업 체제를 갖추는 동시에 전산망 설계 및 관리 업무의 통합 등에 비용과 노력을 기울여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교훈을 새겨야 마땅하다.
농협이 숙원인 농협법 개정에 성공, 거창하게 새 출발을 알린 직후에 터진 대형 사고의 원인을 얼마나 조속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지 지켜볼 일이다. 우선은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아야겠지만, 고객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지속적인 보안 강화가 절실하다. 금융 전체의 신뢰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감독 당국도 각성과 함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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