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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말아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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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말아톤 이후

입력
2011.04.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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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호주에서 거주할 때의 일이다. 보행에 장애가 있어서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안 되는 동포 하나와 친하게 지냈다. 1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니, 당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수준을 짐작할 만 하다. 이 동포는, 반드시 그래서만은 아니었겠으나, 어떻든 이민을 떠났고 그곳에서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분이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혼자서 산책 나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만족스럽다더니 그 말은 또 무슨 뜻인가. 혼자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가면 하도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나서니 도무지 홀로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정도 병이라고, 그런 말을 농담 삼아 하는 것 같았다.

장애인 보듬지 않는 사회

인상적인 것은 그분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의 장면이다. 딸들이 아버지의 휠체어에 걸터앉아 장난을 치거나, 아버지의 다리를 두드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게 무엇이 인상적이겠나. 10년 전의 내 시선이 고작 그랬다는 것이다. 그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 특별하게 여겨질 만큼.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이 아들에게 자폐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어 그 아들을 외국으로 떠나 보냈다는 사연을 밝힌 모양이다. 그 말을 내놓고 하기가 오래 걸린 모양인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 없다. 평생 아이와 눈 마주치고 대화 한번 하는 게 소원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그렇다면 곁에 두고 끝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어찌 외국으로 보내기까지 해야 했을까. 아버지가 아들의 눈을 마주칠 때까지의 그 안타까운 기다림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였겠다.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보듬어 주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는 주위의 사람들이 아팠겠다.

자폐아에 대한 관심은 영화 '말아톤'으로 고조되었다가 곧 잊혀졌고, 또 수영소년 이진호군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이후 다시 잊혀졌다.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이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안까지 마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또 부끄러워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런 관심과 부끄러움이 구조나 정책의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최근에 어느 신인 가수의 노랫말이 심의에 걸려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가사에 '벙어리'라는 표현이 있어서 그렇단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을 만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네'라는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장애인을 비하할 수 있다는 게 이유란다. 어느 네티즌이 그 기사 댓글에 그러면 앞으로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말도 쓰면 안되나요, 달아놓았다. 나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대중가요도 창작의 영역에 있다는 말을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가사의 진정성에 대해서 가수를 대신해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언어 표현 하나에도 그토록 세심한 우리 사회가 정작 얼마나 세심하게 장애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가 궁금해질 뿐이다.

일상에서 세심한 배려를

외국 어느 도시에 갔다가 좀 특별한 버스를 봤다. 버스가 정거장에 서 문을 열면, 입구가 바닥으로 내려가 보도와 맞닿게 되어있었다. 휠체어가 타기 쉽도록 고안된 버스인 것이다. 그곳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을 참으로 많이 봤다. 그 도시에 장애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도시의 버스들이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봉사라는 말을 굳이 써서 뭐하겠는가. 다양한 사람들이 공히 같은 것을 누릴 뿐이다. 그 다양한 사람들 중에 다만 내가 있을 뿐이다.

대중가요의 가사 하나에도 지극히 세심한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보다 더 세심해지기를 바란다. 가사를 잘라내는 것보다는 길의 턱을 잘라냈다는 보도를 보고 싶다. 그러면 네티즌들의 흐뭇한 댓글이 참 많이 달리겠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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