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자립에 찬물 끼얹지는 말아야죠"
원전 이외의 대안은 없는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목도하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날마다 치솟는 기름값도 그 한 원인이다. 한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인다. 지난해보다 1,950억원(24.1%) 늘어난 1조 35억원 규모다.
하지만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09년 현재 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5.2%)에도 훨씬 못 미치는,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일보는 녹색연합과 공동기획으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정책ㆍ산업의 실태와 문제점, 전망을 시리즈로 진단한다.
국내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의 원조라 불리는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 2003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을 벌였던 이곳은 "전기 안 쓰고 살 수 있느냐"는 비판논리에 맞서 친환경적 삶을 지향했다. 30가구 50여명이 사는 이 마을에는 2005년 주민 출자로 설립한 부안시민발전소가 있다. 41kW의 용량을 갖춘 태양광 발전으로 마을 소요 전력 60%를 충당하고, 남는 전력은 한전에 kW당 532~716원에 판매한다. 지난해 판매액은 3,000여만원. 수익은 출자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부안시민발전소가 그간 해마다 확충해오던 태양광 발전기기의 증설은 지난해부터 중단됐다. 내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 대신 '의무할당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에 대해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보조해주는 제도. 반면 발전량의 일정 규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는 의무할당제는, 그 대상을 대규모 발전사업자로 제한하고 있다. 소규모 태양광ㆍ풍력발전소는 새로 짓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 마을 어귀를 노랗게 물들이던 유채꽃도 사라졌다. 등용마을은 2007년부터 바이오디젤용 유채를 경작해서 생산한 '착한 기름'으로 경운기를 굴렸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세계 유채 단가보다 3배 높은 생산비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며 지원을 끊고, 지식경제부가 바이오디젤 자가 생산ㆍ소비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이곳의 유채밭은 자취를 감췄다. 덩달아 마을 방문객도 크게 줄었다.
신재생에너지 예산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같지만 정부의 정책은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제도는 대기업에 유리하게 바뀌었고, 주민과의 소통 없이 시설 확충에만 혈안이 돼 있다.
대표적 예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그린홈 100만호' 사업. 태양광 주택 수는 2004년 310가구에서 2009년 1만4,895가구로 늘어났지만 호당 보급량은 2.49kW에서 0.91kW로 줄어들었다. 발전량 자체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미국 비영리재단 '퓨 자선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용량은 국가 전체의 0.3%(399GW 중 1.2GW)로 미미했다.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은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주민참여형, 지역분산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에너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부터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 신재생에너지
화석에너지 고갈과 환경문제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존 화석연료나 햇빛, 물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얻는다. 한국은 재생에너지(태양열, 태양광, 바이오매스, 풍력, 소수력, 지열, 해양 에너지, 폐기물 에너지)와 신에너지(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수소에너지) 11개 분야를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하고 있다.
■ 환경 파괴 대규모 조력ㆍ풍력발전 쏠림현상… 이정표부터 틀렸다
지난 11일 인천 강화군 강화문예회관 앞. 어민 등 약 300여명(경찰추산)의 강화도민들은 '인천만 조력발전소 사전 환경성 검토 주민설명회' 개최를 막고자 회관 앞을 봉쇄하고 있었다.
행정 절차상 설명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매립 승인은 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들은 "일본 원전 사태 이후 조력발전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홍보물이 집마다 배달됐다"며 분에 차 있었다.
이들이 조력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라 하지만 오히려 바다와 갯벌을 죽게 한다"는 것. 한국수력원자력과 GS건설, 국토해양부가 3조 9,000억원을 들여 세우는 인천만조력발전소는 강화 앞바다에 18.3km에 달하는 거대한 방조제를 만들어 연간 1,320MW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발전소가 들어서면 강화갯벌의 5분의 1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여의도의 6.1배 규모다. 어민들은 생업을 잃고, 방조제로 인해 안개일수가 늘어나면 농사에도 큰 지장을 받게 될 것이라 했다. 세계 5대 갯벌이라는 천혜 자연환경 덕을 보고 사는 관광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평생 맨손어업과 농사로 자식들을 다 키워낸 박광웅(72)씨는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조개, 굴이 씨가 마르는 것은 물론이고, 연평도 등지에서 잡히는 꽃게도 산란은 여기서 하기 때문에 국산 수산물 유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화의 한 해 꽃게 수익은 1,500억원, 젓새우는 150억원에 이른다.
박씨는 또 "준공을 앞둔 시화 조력발전소 근처에 갔더니 어민들은 완전히 생활터전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게 우리의 미래 아니겠느냐"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 춘천 내수면에서 왔다는 어촌계장 박찬수씨도 "한강을 막기 때문에 자연산 민물장어와 황복도 구경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조력은 방조제 건설이 환경파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많은 나라들이 계획을 철회하고 있는 발전 방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조차가 크다고 알려진 영국의 세번강도 생태 보존을 위해 중단했다. 독일은 해양에너지를 재생에너지 범주에서 아예 빼버렸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강화와 인천만 등 조력발전소가 두 개나 생길 예정이다. 조력발전반대 군민대책위 남궁은경 공동대표는 "내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FIT)대신 '의무할당제'(RPS)가 시행되면서 사업이 탄력을 받은 것"이라며 "사업자들은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량을 쉽게 채우기 위해 개발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RPS는 500MW 이상을 생산하는 발전회사는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제도. 해당 회사들은 내년 2%에서 2020년엔 무려 10%까지 달성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자들은 소규모인 풍력이나 태양력 대신 손쉽게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조력과 대규모 풍력에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전북 무주의 풍력단지 조성계획도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지경부 한 관계자는 "발전차액지원이 정부가 부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외국산 소재나 부품 수입이 증가하고, 발전차액을 노린 불법 발전 등 부작용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량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그 부담을 정부 대신 시장이 지게 된다는 점에서 채택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도 변화 예고에 파장은 컸다. 부안 시민발전소처럼 민간에서 태양광 발전기기를 늘리지 않고 있다. 2008년 추가 설치된 태양광 설비는 275MW 규모였지만 2009년엔 72MW로 확 줄었다. 소형 발전소를 세워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고, 수익금을 에너지 빈곤층에 지원해온 시민단체 '에너지 나눔과 평화'는 FIT가 시행 중인 불가리아로 태양광발전 사업을 옮겨갈 생각을 할 정도다.
오스트리아는 1998년 의무 할당제를 도입했으나 2003년부터 발전 차액 지원제도로 돌아왔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의무 할당제 도입 이전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 나라도 FIT를 고수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부경진 박사는 "일본은 태양광에 한해서 FIT를 도입했다"면서 "일부 에너지원에 대해서는 FIT를 적용, RPS와 공존하는 유연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지자체 차원에서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시행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더욱이 정책의 혼선으로 삐걱거리는 신재생에너지는 투자 규모에서도 갈 길이 멀다. 미국 비영리재단인 '퓨 자선기금'에 따르면 우리의 신재생에너지 투자성적은 G20 국가 가운데 17위(2010년 기준)에 머물렀다. 2009년 투자한 3억 5,600만 달러는 20개국 총 투자액의 0.17%에 불과했다. 원자력과의 예산 차이도 엄청났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근 5년간 예산을 분석한 결과, 핵발전 연구개발 및 홍보비용은 1조4,330억원인데 비해 신재생에너지는 8,777억원이었다. 핵발전이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개발사업, 원자력의학원 운영비 등을 뺀 금액이란 점을 감안하면 두 발전의 예산 차는 더욱 크다.
강화=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외국서 '짝퉁 재생에너지' 비판받기도
'2.5%냐, 0.7%냐.'
두 숫자는 모두 우리나라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량이 전체 에너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전자는 2009년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가 집계한 것이고, 후자는 같은 해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에 준한 결과다.
두 숫자가 큰 차를 보이는 건 국제기구와 우리나라의 재생가능에너지 분류법이 다르기 때문. 우리나라에서 신ㆍ재생에너지는 재생에너지(태양에너지, 바이오에너지, 풍력, 소수력, 지열, 해양에너지, 폐기물에너지)와 신에너지(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수소에너지)를 포함한다. 반면 IEA의 재생가능에너지에는 산업폐기물과 재생 불가능한 도시폐기물, 연료전지 등이 속하지 않는다. 이는 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변수는 폐기물이다. 폐기물은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의 75%(2009년 기준)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에너지원. 그러나 국제사회는 대개 재생 가능한 도시폐기물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국제기구와 국내 통계는 큰 차가 날 수 밖에 없다. 국가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외국에서 사례발표를 할 때 '그게 무슨 재생에너지냐'는 비판을 받아 창피할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정부도 이런 혼란을 알고, 2009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원)에 신재생에너지 분류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에경원 부경진 박사는 ▦현행에서 재생불가 폐기물과 연료전지 등 일부 에너지원을 빼는 안 ▦신에너지를 제외하는 안 ▦재생에너지 폐기물에너지 신에너지 청정에너지로 나누는 안 등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3안을 중심으로 내년부터 관계 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내년은 돼야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수반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데만 급급한 것도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999년 11만8,902MWh(시간당 사용한 전력량, 1MW는 1,000kW)에서 2009년 461만 7,886MWh로 10년 새 40배 가량 늘었다. 하지만 총 발전량도 두 배 가까이 늘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0.05%에서 1.07%로 소폭 증가했을 뿐이다.
녹색연합 이유진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은 "전력소비를 조장하는 왜곡된 전력요금체계 개편과 빌딩 및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펼쳤다면 전력소비량이 이렇게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며 "에너지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수요관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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