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기업형슈퍼마켓(SSM). 한참 동안 여러 브랜드의 생수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주부 안모(34)씨는 결국 500㎖짜리 2병을 집어 들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세살바기 딸아이 먹일 물을 따로 사려고 왔는데 방사능 비가 내린 7일 이전에 생산된 제품이 이것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차라리 작은 동네슈퍼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서둘러 매장을 나섰다.
'먹거리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신선식품에 이어 가공식품 물가까지 치솟기 시작하더니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여파로 방사성 물질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일부 식음료업체들이 편법적으로 가격인상을 부추긴다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대형마트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전국적으로 '방사능 비'가 내린 뒤 생수와 소금, 김, 미역, 다시마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관계자는 "사재기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며칠 새 생수나 포장김만으로 카트를 가득 채운 고객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고 전했다.
소금의 경우는 지난달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재기 열풍이 우리나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지인 전남 신안지역의 1~3년 묵은 천일염은 올해 1년간 판매할 30kg들이 3만포(900톤)가 벌써 다 팔렸을 정도. 일반 소금값도 지역별로 최근 보름 새 20~30% 가량 뛰었다.
이는 일본이 원전 사고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낸 뒤 '혹시나' 하는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백화점 식품코너에서 판매중인 굴비가 올해 1월 이전에 잡아둔 것이 알려지면서 이달 첫 주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2%나 급증한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불안감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일본의 원전 사고 위험도가 7등급으로 상향되는가 싶더니 요오드나 세슘보다 훨씬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진 스트론튬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더욱이 지난 12일에는 경남 통영과 남해지역의 시금치, 제주의 상추 등에서 방사성물질까지 검출됐기 때문. 일본 원전 사고가 국내 수산물 뿐만 아니라 농산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검출된 방사성물질이 기준치에 크게 미치지 않는 만큼 안전하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회사원 오모(43)씨는 "그간 정부는 방사성물질이 우리나라로까지 올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느냐"면서 "정부가 '미량'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일부 식음료업체들은 공식발표 없이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농심이 독점 유통하는 '제주 삼다수'는 내주부터 1.5리터 6개들이 도매가가 200원 가량 인상될 예정이다. 농심은 "출고가를 인상한 적이 없다"며 도매상에게 화살을 돌렸지만 이를 보는 소비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최근 품질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기존 신라면보다 2.3배나 비싼 '신라면 블랙' 출시로 "라면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편법으로 가격을 인상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우유도 지난 7일 일부 제품가격을 최고 200원 인상한 데 이어 당시 가격인상에서 제외된 품목의 가격을 5.5% 가량 인상할 예정이다. 서울우유는 "제조일자 표기 1주년 기념 할인행사가 종료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식품업체들이 할인율을 축소해 편법적으로 가격을 인상해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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