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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나는 정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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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나는 정치가다'

입력
2011.04.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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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TV 방송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형식을 본 따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나는 정치가다'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지 국회방송에 제안하기로 하였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비판을 이번 기획을 통해 바꿔보자는 공익적 의도를 가진 것이다. 구체적 기획을 위해 다음과 같은 큰 얼개를 만들어 보았다.

가상의 방송프로그램 기획

1.능력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는 정치인의 물색은 정치부 기자들에게 의뢰한다.

2.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들의 미션수행 평가는 전문가와 학자들이 맡는다.

3. 출연자의 미션 주제는 존경하는 국내외 정치인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출연자 본인과 스스로 비교하도록 한다.

4.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시사 상식과 외국어 문제를 퀴즈 형식으로 풀어 점수를 매긴다.

5. 정해진 발표시간을 초과하는 출연자에게는 벌점을 부과한다.

6. 출연자들의 언어 폭력에는 1차 경고, 2차는 퇴장시킨다.

7.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폭력 행사자를 무조건 퇴장시킨다.

프로그램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방법이다. 탈락자를 선정하기 위해 평가자들이 최우수자에게 투표하는 방식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평가자들에 의해 2등으로 뽑힌 출연자는 평균 점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에 의해서도 1등으로 뽑히지 못했기 때문에 탈락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표결 방식을 사용하면 출연자는 최소 몇 명의 평가자들로부터 1등 평가를 받으면 탈락을 면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나머지 평가자들은 무시하는 전략을 세우면 된다. 따라서 평가방법을 바꿔 각 평가자들이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3점 만점의 채점을 하도록 한다.

불행하게도 이처럼 그럴싸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두루 고려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제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 정치부 기자들은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고서도 저평가 되고 있는 정치인들을 찾기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2. 다수의 엄숙한 학자들이 이러한 평가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므로 평가자 집단을 구성하기가 어렵다. 또한 평가자 명단이 발표되면 출연자들의 로비, 금품이나 향응 제공 등이 우려된다.

3. 출연자들이 미션을 직접 준비하지 않은 채 보좌관에게 맡기고, 본인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피부 관리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4. 퀴즈에 정답을 맞추는 출연자가 별로 없어서 진행에 어려움이 많고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까 염려된다. 또한 가난한 정치인들이 사교육비 부담에 빠질 것이 우려된다.

5. 출연자가 벌점에 개의치 않고 버릇처럼 발표 제한시간을 넘겨버리면 방송을 정해진 제 시간에 끝내기 어렵다.

6. 언어구사 능력이 뛰어난 출연자들의 언어 폭력을 판단하기가 모호하며, 벌점을 부과하면 많은 항의가 예상되어 진행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7. 물리적 폭력이 다수에 의해 행사되어 많은 출연자가 집단으로 퇴장 당하면 프로그램 진행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국민에게 감동 줄 수 있을지

이 밖에도 저평가된 정치인들을 계속해서 충원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공정성을 지킨다 해도 탈락자가 승복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출연자가 제기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마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탈락자는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며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출연자들이 과연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감동은커녕 실망을 주게 된다면 정치를 두 번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낮은 국회방송의 시청률을 더 떨어뜨리는 기획이 될 것도 걱정스럽다. 이런 모든 우려를 고려할 때, 이 프로그램 제안서는 내 컴퓨터에서 삭제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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